나의 특별한 추석 Halo - Halo!
이나영 - 글로벌 테마체험교육 한국인 강사
이번 추석은 조금 특별하다. 작년에 우리 할머니 집에서는 지글지글 전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2013년 추석에는 지글지글소리와 함께 영어와 한국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영어 웃음소리의 주인공은 내 친구 마야와 치미이다.
인도네시아인 마야와 부탄 출신인 치미는 ‘글로벌테마체험교육’이라는 미지센터 프로그램에서 만났다. 내 파트너인 마야와 할로할로 프로그램을 하던 중 마야가 혼잣말처럼 “Chuseok is too lonely for foreign student”라는 말을 내게 한 적이 있다. 그때 lonely라는 영어단어가 내 머릿속에서 계속 울렸다. 나에게 있어서 추석은 ‘fun, exciting’이라는 단어와 더 어울렸기 때문이다.
나의 이 머릿속의 울림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봤다. 그때 갑자기 든 생각은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추석날 서울에 계신 외할머니댁에 외국인 친구들을 초대하는 건 어떨까?’였다. 마침 마야도 나와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페이스북에 추석에 놀 친구들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결국 추석파티는 이뤄졌다. 마야와 치미가 오겠다고 한 것이다.
9월 18일. 드디어 마야와 치미가 할머니네집 벨을 딩동 눌렀다. 마야와 치미가 우리 가족과 할머니, 이모, 사촌들과 인사를 마치자, 부모님께서는 마야와 치미를 마치 나를 대하듯 대하기 시작하셨다. 문화체험을 빙자하여 일을 시키신 것이다.
추석음식의 꽃은 전과 송편이라고 누가 그러지 않는가? 오전부터 나와 친구들은 신문지 위에 앉아서 각종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치미는 동그랑땡에 계란과 밀가루옷 입히기, 마야와 나는 후라이팬에서 동그랑땡 굽기 등의 일을 계속했다. 가끔씩 친구들과 즉석에서 부친 전을 몰래 먹은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전과 각종 나물이 올려진 밥상에서 친척들과 다같이 점심을 먹었다. 아빠는 친구들의 나라와 생활에 대하여 재밌어 하시면서 질문을 하셨다. 외할머니도 잘 들으시면서 예전에 겪었던 6.25, 신문에서 읽었던 일화들을 이야기 해주셨다. 할로할로에서 만나면서 친구들과 꽤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친구들에 대해 몰랐던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하나씩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재미를 느꼈다. 우리는 모두 밥상 위의 삼색나물처럼 섞여 갔다.
사실 우리의 추석일정은 연예인 스케줄에 버금갈 정도였다. 점심을 먹은 후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동네 산책, 다시 송편 만들어서 식혜와 함께 먹기, 윷놀이 하기, 영화관 가서 친구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슈퍼배드!!)보기의 일정을 오후부터 소화했다.
다 추억이 되었지만 송편 빚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각자 만두처럼 송편을 빚었는데, 우리의 모습들처럼 다양한 송편이 만들어졌다. 예쁜 송편, 못생긴 송편, 왕만두 같은 송편, 초승달같이 생긴 송편, 손가락으로 꾹 눌러서 자신의 것임을 표시한 송편(치미가 그랬다) 등등..서로 송편이 못생겼다고 놀리는 사이 금방 완성했다. 그리고 마야는 옆에서 사진기사 노릇을 톡톡히 했다. “너무 신기합니다. 재밌어요”를 연발하며 마야의 디지털 사진에 우리의 추억이 차곡차곡 쌓였다. 마야의 추석이 ‘lonely’에서 ‘fun’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어느덧 저녁이 되어서 치미와 마야가 우리 가족들과 인사할 시간이 되었다. 마야와 치미가 가족들을 껴않았다. 치미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우리 가족들에게 부탄 돈을 하나씩 기념으로 주었다. 외할머니도 “언제든지 다시 놀러오라”고 말씀하시며 문 밖까지 나와 우리가 갈 때까지 배웅해 주셨다. 마야는 내 옆에서 “It’s really special Chuseok to me.”라고 여러번 말했다.
나도 그랬다. 올해의 추석은 외국인 친척(친구)들과 보낸 ‘특별한 추석’이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어릴 때는 즐겁기만 한 추석이었지만, 20대가 된 뒤부터는 추석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늘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친척을 만나는 것이 지루했다. ‘평범한 추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외국인 친구들에게는 이런 평범함이 간절히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번 추석을 통해서. 그리고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평범한 추석이 이들과 함께 한다면 ‘특별한 추석’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그런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겨울에는 ‘특별한 크리스마스’, ‘특별한 설날’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셨다. 언제든지 외국인 친구들을 데려와서 파티를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여러분 옆에 있는 다른 나라 친구들에게 ‘특별한 그날의 초대장’ 하나 어떨까요?
-이나영선생님은 미지센터에서 주관하는 글로벌테마체험교육 한국인 강사입니다. 현재 Maya와 함께 인도네시아 팀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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