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 서사의 기원, 역사 그리고 비교학적 성찰
1. 길잃은 우리의 나침반, 신화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정재서 교수님이 청중을 향해 물었다.
잠깐 멈춰서서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할려고 했는데, 교수님께서 바로 말씀을 이으셨다.
"우린 길을 잃으면 반사적으로 첫 출발지로 되돌아가서 다시 나아갈 길을 생각해 봅니다."
테크놀로지의 현실화와 그 가능성이 아직도 푸르디 푸른 요즘, 과학과 인간이 나아갈 길을 우리의 상상력의 원형이었던 신화를 통해 살펴보는 1시간 반의 향연을 정리해 본다.
<교보 인문학 석강 신화적 상상력으로 문화읽기 포스터>
신화적 상상력으로 문화읽기의 마지막 강의의 소재는 말로만 들어도 신나는 사이보그와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 널리 유행한 SF영화의 철학적 바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동양과 서양이 어떻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지 영화를 통해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다.
<교보 인문학 석강 신화적 상상력으로 문화읽기 포스터>
동양의 사이보그, 내부적으로 완전한 개체
동양의 신화에서 사이보그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의 신화집인《산해경》에서부터 시작했다. 《산해경》의 기굉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고 한다.
"기굉국이 그 북쪽에 있다. 그 사람들은 팔이 하나에 눈이 셋이며 암수 한 몸이고 무늬 있는 말을 탄다." "그 사람들은 기계장치를 잘 만들어 그것으로 온갖 짐승을 잡기도 하고 나는 수레를 만들 줄 알아..."
교수님은 위의 글들을 통해 첫번째 동양신화에서 사이보그는 무한성, 완전성을 투사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열자(列子)》의 기록을 통해 살펴 본 바에 의하면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테크놀로지(기술)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있었고 그 위험성에 관해 염려한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맹자》의 기록에서도 유사하게 살펴 볼 수 있는데 그 당시에는 이미지의 실재를 대신하는 힘에 대한 두려움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하셨다.
그러나, 도교에서는 인조인간의 위험성을 인지했으나 신체적 내구성, 무한한 능력에 대한 매력을 느껴 완벽한 신체의 실현을 꿈꿨다고 했다. 인간의 몸의 내부에서 그러한 완전한 개체가 이루어질 때 실현되는 형태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아바타'라는 것이다.
이렇듯 동양에서는 사이보그(테크놀로지)를 외부적으로 확장된 기능에서 내부적으로 완전한 개체를 이루는 실체로 변환되어 왔다고 정리해 주셨다.
<열강중인 정재서 교수님>
서양의 사이보그, 인간의 확장된 도구
서양에서 사이보그에 관한 이야기는 오이디우스의 《변신이야기》와 그리스 신화 중 이카로스(Icarus) 이야기로 부터 시작된다. 다이달로스는 새의 킷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아들인 아카로스와 함께 하늘을 날아 탈출하였으나,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에 다가갔다가 에게해에 떨어져 죽었다. 여기서 나타난 '이카로스 패러독스'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 결국 그것을 망하게 할 수 도 있다는 교훈을 준다고 했다.
서양의 사이보그에 관한 신화적 서사시는 헤브라이 전통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다고 나와 있는데, 동양사상의 사이보그에 대한 경고와는 다르게 인간을 재현할 긍적적인 소지(素地)로서 사이보그를 사유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연금술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여 더욱 더 확대 발전하게 됐고, 그 결과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영육이 완전한 인간을 창조해 내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서양의 사이보그에 관한 신화적 메타포는 신체 기능의 도구적 확장이라는 테크놀로지의 성숙을 촉진하고 근대 과학을 발전시킨 기반이 됐다. 동양이 내단법을 통해 사이보그와 인간의 완전체를 창안해 낸 것과는 다르게, 서양은 외단법을 통한 신체적 확장이라는 완벽한 합성인간을 추구하게 됐다고 정리해 주셨다.
<프랑켄 슈타인 설명>
영화 속 사이보그 이야기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는 사이보그가 어떻게 묘사되고 있을까? 인간이 사이보그를 지향하고 있을까, 아니면 사이보그가 인간을 지향하고 있을까?
인간이 사이보그화를 지향하는 영화로는, 《크래쉬(Crash)》, 《론머맨(Lawnmower man)》등이 있다고 한다. 이런 영화에서는 인간의 기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기계와 교감하며, 기계없이는 인간의 존재성을 실감할 수도 없게 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교수님께서는 요즘엔 10년 정도 자동차와 교감하다 시장에 내다팔 때 뭔가 애틋한 기분이 생기는 게 이런 이유때문이라고 하셨다.
<영화 속 사이보그 이야기>
사이보가 인간을 지향하는 영화로는 《터미네이터(Terminator)》,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등이 있다고 한다. 이런 영화에서는 인간을 닮고자 하는 기계들과 인간의 순애보를 그리게 된다.
한편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와 같이 인간과 사이보그의 구분이 모호한 영화도 있다고 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을 만드는 타이렐사를 통해 테크놀로지의 미래에 대한 비판적 입장 즉, 디스토피아적 전망도 맛볼 수 있겠다.
유토피아를 꿈꾸며
동양과 서양의 신화와 사이보그에 관한 사상을 비교해 볼 때 이르는 공통적인 결론은,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적 구분으로는 인간의 존재론적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인간과 사이보그, 정신과 육체의 이원구분을 철폐하고 통합적 사유를 통해서만이 청말 강유위가 《대동서》에 기록한 이상적인 사회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로 강의는 끝을 맺었다.
강의를 듣는 내내 청소년들이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우리 일상에 즐비한 인문학적 지혜들을 더욱 더 많이 발견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를 듣고 있는 청중들>
이번이 마지막 강의라 교수님의 사인회를 갖기도 했다. 부모님과 함께 와 줄서있는 청소년이 모습이 반갑기만 하다. 많이 배웠겠지?
<저자 사인회>
<저자 사인회>
이렇게 10월 2일부터 한달간 매주 수요일에 진행되었던 정재서 교수님의 '신화적 상상력으로 문화읽기' 4회 강연이 모두 끝났다. 다음 강의도 많은 청소년들이 함께해서 삶의 지혜들을 건져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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