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책 읽는 중"

 

10 26, 옛 서울시청사가 서울도서관의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개관 다음 날인 27일에는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계속되었다.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도서관에서 진행된 ‘2012 서울 북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이 날 역시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었다. 27일 저자와의 만남 행사에는 덕성여자대학교의 이원복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하고자 먼 지방에서부터 찾아온 학교 선생님들부터 엄마 손을 잡고 온 학생, 어릴 적 먼 나라 이웃나라의 팬이었음을 자처하는 직장인까지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의 자리를 메워 시작 전부터 열기가 뜨거웠다. 출판평론가 김기태 교수와 이원복 교수간의 북 토크형식으로 시작된 본 강연은 이원복 교수의 책에 대한 애정, 만화가로서의 삶, 인문학의 중요성 등을 깨달을 수 있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큰 호응을 얻었다.  

 

서울도서관은 서울시의 행정 중심지였던 옛 청사를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어보자는 취지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20여 만 권의 장서와 5m 높이의 벽면서가, 장애인 자료실, 서울자료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서울시내 320여 개 도서관 자료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통합 도서검색 서비스도 지원한다. 도서관 내부는 1926년 건립 당시 청사의 외벽과 홀, 중앙계단을 그대로 복원하여 서울의 역사적인 상징성 또한 느껴볼 수 있다.

 

 

 

현재 서울 시내에 건립된 도서관만 1000여 개.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동네 주변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생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쁜 일상으로 심신이 지쳤다면? 어릴 적 도서관에서의 추억과 역사의 풍미까지 함께 누릴 수 있는 서울의 대표도서관, 서울도서관을 찾자  

 

저자와의 대화 (김기태 교수 질문, 이원복 교수 답)

 

 

선생님께서는 대학생 시절 건축학을 전공하시고, 유학을 떠나셔선 디자인학부를 졸업하셨습니다.  거기에 복수전공으로 철학과에서 서양미술사까지 배우셨지요. 이렇게 여러 가지 영역을 넘나드시며 살아오셨는데, 이건 이 모든 걸 잘한다는 의미입니까? 아님 다 못한다는 겁니까?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사람이 한 분야만을 부지런히 파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흔히들 ‘T자형 인재를 원한다고 하잖아요. 잡다한 지식을 고루 갖추고, 또 자신의 전문분야는 깊게 탐구하는 사람. 스티브 잡스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닙니까? IT 기술에 인문학적 교양과 소양을 접목, 융합시켜서 큰 혁신을 이루어냈지요. 사실, 그 사람은 이름이 좋아서 성공한 거에요. 잡스(jobs). (job)은 잡인데, 하필 또 복수잖아요. (웃음)

 

그 많고도 많은 길 중 만화를 택하신 계기가 뭡니까?

원래 전 만화를 그리던 사람이에요. 쉽게 말하자면 만화를 그리다가 다른 분야로 외도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1 때부터 줄곧 그림을 그려왔어요.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만화가라는 직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죠. 단순한 아르바이트 정도로만 생각되었을 뿐이지 그 누구도 만화 그리는 일을 평생직업으로 생각하지 못하던 시대였어요.

 

형제 분들께서도 모두 교수이시고, 부모님께서도 상당한 학자적 소양을 갖추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만화가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겠어요.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셨어요. 저희 가족은 7남매였고요. 제가 어릴 적인 1950년대의 대한민국은 가장 못사는 나라 중 끝에서 두 번째였습니다. 지금의 아프리카보다 사정이 좋지 않았었죠. 벌어먹고 사는데 급급했기에 형제들은 동생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신경 쓸 겨를 조차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저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셈이죠. (웃음) 

예전에는 만화를 서점에서 사기 힘들었죠. 만화가게에서나 읽는 게 다였습니다. 그런 만화 계를 양지로 내놓은 것이 이원복 교수님이십니다. 저작권 사용료(인세)를 최초로 받기 시작한 만화가도 교수님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양지로 내놓았다는 건 지금에 와서나 하는 이야기이고요. (웃음) 계몽사라는 출판사가 있는데, 거기 회장으로 계신 분이 제 고등학교 동기 동창입니다. 84년대에 귀국해서 그간 신문에 연재해온 먼 나라 이웃나라를 엮어서 출판하려고 그 친구에게 찾아갔더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원복아, 어떻게 계몽사에서 만화를 내냐?” 나중에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고 나서 언론 인터뷰가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벼룩시장부터 주요 5대 일간지에 이르기까지 묻는 내용은 단 하나였어요. “어떻게 대학 교수가 만화를 그릴 수 있느냐.”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먼 나라 이웃나라가 매스컴을 타면서 교수가 그린 만화라고 알려지니까 엄마들이 반기기 시작했어요. 자녀가 만화를 읽는 것은 싫은데, 너무 재미있어 하니까 안 읽힐 수도 없고. 그래서 찾은 일종의 알리바이가 학습 만화인 거죠. 그렇게 시작된 관심이 25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한 만화가 그 오랜 기간 동안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신기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동 도서전이 볼로니아에서 개최되는데요, 거기에서 상을 받는 것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대단한 영광이라고 합니다. 상을 받는 사람도 대단한데, 교수님께서는 현재 수상자를 정하는 심사위원으로 계십니다. 국내 최초의 볼로니아 아동도서전 일러스트레이터 심사위원으로서 우리나라 만화 수준을 판단한다면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그림이 어떻다기보다도 그 안의 내용, 콘텐츠가 중요한 거죠. 실제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아동도서 시장입니다.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한국에서 개최되는 도서전에 자주 참석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아동도서가 소모품화 되고 있다는 게 아쉬울 뿐이죠. 출산율이 낮아지고, 아기 수가 적어지니까, 우리 애한테는 헌 책을 사줄 수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부모님들이 새 책을 그렇게 많이 사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위 말하는 선진국일 수록 부모님이 자녀에게 직접 책을 사주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기껏해야 생일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게 다이지요. 대신 아이들은 도서관을 이용합니다. 그런 국가들에서는 어린이 도서가 도서관에서 절대적인 요소로 자리잡은 반면 우리나라는 한 가정집이 도서관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대조적이지요.

 

그렇다면 교수님, 왜 책을 읽어야 하나요?

요샌 놀게 넘쳐나죠. 애니팡도 있고, 앵그리버드도 있고. 그런데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도, 책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은 천지차이가 난다는 거죠. 다시 말해, 책을 읽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겁니다. 왜냐, 한번 살펴봅시다. 책은 활자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반면 텔레비전과 같은 시각 매체는 그림으로 되어있죠. 예컨대 우리가 아무것도 읽을 수 없고, 모든 정보와 지식을 오로지 PC, 모바일, 텔레비전에서만 섭취해야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만약 사과를 보았다면,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빨간 사과만을 사과의 전부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파랗거나, 노랗거나, 아주 큰 떠올릴 수 없다는 거죠. 반대로 사과를 문자로서 이해한 사람은 한 단어에 대한 무한대로의 연장이 가능합니다. 책이 아닌 다른 시각매체는 이렇게 상상력과 유연성을 위축시켜 버리기 때문에 오늘날의 융합의 시대에는 책의 중요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덕성여대에서 정년 퇴임하셨는데 여전히 석좌교수로 학교에 나가고 계십니다.

석좌교수를 잘못 생각하면 돌 위에 앉아있는 교수로 생각할 수도 있어요. (웃음) 그건 아니고, 석좌교수는 학교에서 나오는 월급이 없다 뿐이지, 정식 직원으로 기업체에서 지원하는 월급을 받고 다닙니다. 명예교수는 대부분 20년 이상 근무하고 은퇴한 교수로 석좌교수와 달리 학교의 정식 직원은 아니지요. 강의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됩니다. 30년 가까이 강의만 했으면 쉴 때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웃음) 강의를 하지 않아도 월급은 나오니, 좋아도 너무 좋은 거죠. (웃음)

 

교수님께서는 책을 고르는 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정말 애매합니다. 자기 취향이 있잖아요. 요즘은 아무래도 인문학이 강조되고 있죠. 인문학은 지식보다는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는 학문입니다. 어렵지 않아요. 예컨대 철학은나는 왜 사냐.’는 거거든요. ‘나는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산다,’ ‘내 멋에 산다.’ 이것도 다 일종의 철학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어린 친구들은 인문학을 쉽게 설명해놓은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요새는 쉽게 풀이해놓은 고전도 참 많이 있잖아요.

 

교수님, 대학은 꼭 가야 하나요?

꼭 가지 않아도 되죠. 일례로 독일에서는 대학 진학률이 60퍼센트밖에 되지 않습니다. 캐나다에 아들이 유학을 가있는데, 한 번은 현지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대학에 왜 가냐고 물어보니까 대답이 엉뚱하더라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면 임금이 1650인데, 대학을 졸업하면 2250에서 시작한다. 참고 설명을 드리자면, 그 곳의 아이들은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는 게 아닙니다. 보통 8년 정도 걸린다고 해요. 서양에서는 아무리 부잣집이라고 해도 18세가 되면 독립하고 집에서는 돈을 대주지 않기 때문이죠. 1년 공부하고, 휴학해서 돈 벌고, 또 다시 1년 공부하고……. 이런 식 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애초에 그게 싫은 사람은 대학에 가지 않는 게 낫습니다. 대학생들이 휴학하고 쉬는 동안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해나가면 8년이 지난 시점 즈음에서는 임금이 비슷해지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서 대학 진학이 당연시 되는 건 인생의 설계 자체에 거품이 많이 껴있고, 부모의 과잉보호가 너무 심해서입니다. 대학 진학 여부는 순전히 자신의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노래가 음악성 측면에서 독특한 것도 물론 이유가 되겠지만 이번 센세이션은 그리 단순한 이슈가 아닙니다. 강남스타일과 싸이가 큰 화제를 모았던 시점을 살펴보세요. 8월에서 9월말일 겁니다. 그 때 우리나라는 올림픽 5위라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결과입니다. 상위 5개국 가운데 1,2,3위 국가가 모두 일 억 이상의 인구를 지니고, 국토가 제일 큰 나라들이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홈 그라운드인 영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악조건 속에서 1등을 한 셈입니다. 백인 사이에는 남을 칭찬하기 싫어하는 정서가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가 잘 되는 꼴을 못 보지요. 그런데 갤럭시가 아이폰을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올림픽에서 5등을 했고요. 현대 자동차는 이리저리 굴러다녀요. “코리아, 이건 뭐야?” 말은 안 하지만 ‘What is Korea?’라는 잠재의식이 깔리기 시작한 거죠. 계속해서 그런 관심을 부인해오다가 결국 한국이 마음에 든다고 마음 놓고 터뜨린 게 싸이입니다.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만 모르나 본데,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몰라요. , 이번 강남스타일열풍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국력이 터진 겁니다! (웃음)

 

 

 

 

아시아 아프리카 희망기구 청소년들의 달콤한 프로젝트

 

 

 

 

“네팔의 어린이들을 도와주세요!”

 

발렌타인을 앞둔 주말 오후,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노란색 조끼를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함께 이런 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네팔의 탁아소 건설에 사용될 금액을 마련하기 위한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판매를 위해서다.

 

아시아 아프리카 희망기구(World Hope Asia & Africa Foundation, 이하 와프)에 소속되어 현재까지 활동 중인 이 청소년들은 지난 1월 네팔로 자원봉사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네팔 어린이들의 열악한 생활·교육조건을 몸소 느끼고 네팔의 어린이들에게 작은 희망을 전해주고 싶은 의지가 모여 오늘의 행사에 이른 것이다. 청소년들은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사전에 직접 제작한 네팔 아이들의 삶에 대한 팸플릿을 행인들에게 나누어주며 모금 행사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가 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며 플래카드를 통해 와프가 하는 일을 홍보하기도 했다.

 

          

  

기대와는 달리 바쁜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팸플릿을 받기조차 거부하고 무시하는 사람들, 바쁘다는 핑계로 못들은 척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와프 청소년들의 활동은 오히려 활발해졌다. 네팔의 아이들을 위한 도움을 더욱 큰 목소리로 호소했고,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초콜릿에 관심을 가지는 여학생들부터, 네팔을 돕는 의미 있는 행사의 목적에 대해 알고 큰 금액을 기부해주시는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현장에는 훈훈한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이 날 행사로 총 집계된 금액은 40여만 원. 비록 건설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충분한 금액은 아니지만, 와프 청소년들의 노력이 빛을 발한 시간이었다.

 

필자는 아시아 아프리카 희망기구에서 일하고 계시는 김필주 실장과 오늘의 행사와 자원활동을 주도한 이승아 양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금 더 세부적인 내용에 대하여 들어보았다.

 

▶김필주 실장(아시아 아프리카 희망기구·문화교류협력팀)

 와프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필리핀의 도시로 이주한 원주민들과 거리의 아이들에게 쉼터이자 배움의    공간인 도서관을 오픈하면서 시작한 교육 개발 구호 사업이 오랫동안 준비한 가운데 2011년 1월 아시아 아프리카 희망기구로 시작을 했습니다. 교육이 희망이란 생각에 희망을 주는 국제 구호 기관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와프는 정확히 어떠한 활동을 하는 기관인가요? 이제까지 와프가 걸어온 길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와프는 교육과 문화교류, 국제협력을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의 청소년이 교육받을 권리를 누리고 삶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국내외 청소년이 국제사회에서 세계시민의식을 갖춘 적극적인 주체로 성장하여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촌을 희망하는 교육문화개발기관입니다. 와프는 2000년도 초반 필리핀의 도시이주 빈민과 청소년들의 교육과 구호사업을 시작으로 도서관을 통한 교육·구호사업을 진행해왔고요, 2011년 한국에 외교통상부 소관 정식 NGO로 등록을 하여 ‘도서관 1촌 맺기‘(도서관 보급),’어린이노동자 드림 프로젝트‘ 등을 주요사업으로 진행하여 왔습니다.

 

와프의 상징이 인상적이네요. 색종이 비행기에 담긴 의미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이 함께 그 꿈을 하늘위로 펼쳐보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종이비행기로 우리 청소년들의 희망 메시지가 지구촌의 어둡고 절망 가운데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전달이 되기를 소망하는 의미입니다.

 

 

국내의 불우한 청소년들이 있음에도 해외로 봉사를 나가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을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이미 ODA(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로 해외원조가 8억 달러가 넘는 우리의 세금이 정부와 유엔을 통해 빈곤국가의 구호사업과 교육 사업에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해외 자원 활동은 좋고 싫고의 문제를 떠나서 해야 하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무조건 해외로 나가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해외 자원 활동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 과연 현지인(수혜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불필요한 해외자원 활동은 없앤다 하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자원활동은 유지해서 수혜자 중심의 국제 구호·교육 사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와프에서는 해외 자원 활동을 최대한 줄이고 현지 인력을 통한 모니터링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국제구호나 사회봉사에 관심있는 청소년들이 와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어렵지 않게 참여할 수 있는 활동에는 ‘어노반(어린이 노동 반대) 캠페인’이 있습니다. 레드카드에 ‘어린이 노동 반대 합니다’라고 쓰고 서명을 해서 국제노동 기구에 보내는 프로그램이지요. 이 밖에도 와프에서는 ‘도서관 1촌 맺기’, ‘착한 인형 보내기’, ‘HOBAG (희망의 가방)보내기’ 등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 가 와프에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고의 폭을 넓히자는 것입니다. 국제사회의 흐름과 이슈, 빈곤과 환경 등 우리가 돌아볼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행동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이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겠지요. 그래서 우리 지역에서부터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에 옮기자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해외봉사단체와 차별화된 와프만의 장점이 있다면 자랑해주세요.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월드비전, 유니세프, 굿네이버스 등 많은 기존의 NGO들이 있는데 굳이 와프를 만든 이유가 뭐냐며 특별한 것이 없으면 그만두라고 하시곤 했어요.(웃음) 와프의 특별한 점을 이야기하자면 와프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자연스레 소개가 될 것 같습니다. 와프는 다른 기관들과는 달리 청소년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국제 교육·구호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해 나가는 곳입니다. 물론 기본적인 큰 틀은 본부에서 구성되겠지만,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청소년 기획단이나 참가자(동아리)들에 의해 꾸려지는 활동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와프가 지향하는 목표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수많은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합니다. 그 희망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청소년들이 지역과 사회, 더 나아가 국가와 세계를 바꾸고, 영향력 있는 개개인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승아 (한국외국인학교·Korea International School)

와프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국제 구호단체에 대한 소개를 보고 어려운 지역에서 봉사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와프라는 기관에 대해 알게 되었고, 네팔의 어린이들을 도와주는 이번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네팔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새롭게 느낀 점이 있다면?

직접 네팔에 가서 눈으로 보고 경험을 해보면서 그곳 어린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 외국인 노동자들이 왜 힘들게 한국까지 와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첫째 날, 네팔의 한 벽돌 공장에 방문했습니다. 그 곳에서 무거운 벽돌을 나르는 5~6살 어린이들을 볼 수 있었지요. 그 어린이들의 발은 심하게 붓고, 굳은살이 생겨 우리가 나누어 준 신발들도 겨우 신을 수 있는 정도여서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는?

네팔 벽돌 공장에 있는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상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작은 노력으로 그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자는 취지에서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초콜릿 판매의 수익금은 어떤 일에 쓰이게 되나요?

네팔 벽돌 공장 옆에 탁아소를 만들고 그곳에 계실 선생님을 모셔오는일에 쓰이게 됩니다.

 

판매를 하면서 느낀 점, 특히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판매하는 동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조금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네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과 소중한 성금을 기부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더 열심히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네팔의 청소년들을 돕기 위한 다른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있나요?

이번에 다녀 온 프로그램과 같은 맥락의 네팔 봉사활동이 3년간 이어질 것이고, 이외에도 아이들이 네팔어나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해 줄 계획입니다.

 

미지센터의 청소년들에게 와프의 일원으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한국에서 봉사할 때와는 색다른 경험을 했고, 얼마나 많은 지역들에서 우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작은 것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작은 도움이 필요한 제 3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큰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함께 네팔의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웃음)

 

 

나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희망의 메신저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와프란?

아시아 아프리카 희망기구의 별칭인 와프는 교육과 국제협력을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소외된 청소년이 삶의 비전을 제시하고, 국내외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교류와 나눔의 장을 확산하여 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촌을 희망하는 비영리 교육문화기구이다.

 

 

와프에 대해 알아보았다면, Let's Take Action!

 

1. 꿈꾸는 도서관 1촌 맺기

책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은 인성과 창의성을 기르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운다. 그러나 아시아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의 학교와 지역청소년센터에는 도서관을 관리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거나 도서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에 와프는 독서의 소중함을 알고 적극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고자 하는 학교, 기관 및 기업과 아시아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의 학교와 일촌을 맺어주어 영문도서 기증 및 도서관 지원 모금 활동을 한다. 또한 독서교육, 영어교육, 미술·음악교육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고, 교사 워크숍과 사서 교육을 진행하여 도서관이 지속적으로 운영, 발전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2. 움직이는 희망학교

네팔 정부와 UN 및 NGO 단체들은 어린이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학교교육을 장려하고 있으나, 한 사람이라도 일하지 않으면 온 가족이 굶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학교에 가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다. 또한 학교에 가더라도 기초교육부족으로 인하여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노동 현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에 와프는 현지 교사와 대학생 자원활동가를 직접 노동 현장으로 파견해 기초 언어, 셈, 보건교육 등을 실시한다. 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 스스로가 어린이 노동을 끝내기 위해 앞장설 수 있도록 희망의 물결을 일으키고자 한다.

 

3. 꿈꾸는 HOBAG 프로젝트

꿈꾸는 HOBAG은 HOPE(희망)와 BAG(가방)의 합친 말로써 한국 청소년과 일반 시민이 더 이상 쓰지 않는 책가방과 학용품을 나누고 꿈과 희망을 키워줄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희망 가방을 아시아 아프리카의 소외된 지역의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빈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전달하는 '작은 나눔 큰 꿈 지원' 프로젝트이다.

 

4. 착한 인형 보내기 캠페인

착한 인형 캠페인은 초, 중, 고등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창의적 체험활동 연계 프로젝트로서 아프리카 어린이 에이즈 환우 및 지체부자유 아동들에게 청소년들이 직접 작성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편지와 인형을 보내는 정서적 구호 프로그램이다. 국제이해 교육을 통해 한국 청소년들에게 국제사회 이해와 고통 받고 있는 아시아, 아프리카 어린이들에 대한 상황을 알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인식하고자 시작되었다.

 

5. 6.12 세계 어린이 노동 반대 캠페인

어린이의 인권과 교육권을 박탈하고 빈곤을 악순환 시키는 어린이 노동 문제를 국내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알리고 작은 관심과 나눔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의 삶에 희망을 가져오는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캠페인. 세계 어린이 노동 반대의 날(World Day Against Child Labour)인 6월 12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시작된다. 세계 어린이 희망 사진전이 열리고, Red Card to Child Labour 사진 서명운동이 이루어진다. 이 밖에도 다양한 거리공연이 마련되어 있다.

 

 

청소년들이 만들어가는 HAHA(Head and Heart to Action) 네트워크

 

1. 와프 청소년 기획단

HAHA 네트워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청소년과 청년의 네트워크. 와프와 함께 지구촌 이슈를 알리고 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와프가 청소년의 목소리를 잘 반영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협력하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연중 상시 전국의 중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며, 프로그램 일정에 따라 모집이 이루어진다.

 

2. 와프 동아리

와프 동아리는 아시아 아프리카 소외 지역의 청소년과 지구촌 이슈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각 학교에 스스로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청소년 자치활동이다. 관심 있는 지구촌 이슈와 해결방안에 대해 연구하며, 도서관 지원 사업, 꿈꾸는 HOBAG 프로젝트 등 와프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 실행한다. 매해 3월 초, 전국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모집한다.

 

www.whaf.or.kr

 


특별한 사람들이 꾸는 특별한 꿈의 시작!

“TOGETHER WE CAN!” 2013 평창 스페셜 동계올림픽 D-365 플래시몹 


 
  2012년 1월 29일, 서울 시청 앞 광장의 시계는 어느덧 오후 3시를 알리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약속했던 바로 그 시간. 2013년 대한민국 평창에서 열리게 될 특별한 올림픽의 개최를 정확히 365일 앞둔 시점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인파가 서울광장으로 몰려들었다. 평창 스페셜 동계올림픽 개최를 알리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플래시몹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개그맨 박준형씨가 MC로 나선 가운데, 나경원 2013 평창 스페셜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의 축사로 행사는 그 막을 열었다. 나위원장은 서울 시민들에게 플래시몹 행사를 시작으로 1년 뒤 평창에서 열리게 될 스페셜 올림픽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보내줄 것을 당부했다. 피터 휠러(Peter Wheeler)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SOI) 전략이사와 평창의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이끈 주역인 김연아 선수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김연아 선수의 등장에 손이 어는 듯한 추위도 잊어버린 사람들은 일제히 카메라를 들고 그녀를 보며 환호했다.

 


  대망의 플래시몹이 시작되었다. 이번 플래시몹의 참가자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킹서비스를 통해 철저한 사전계획과 준비를 마쳤으며 서로 친목을 도모하는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오프라인 상에서 처음 만나서인지 사람들의 표정에는 어색하고 긴장한 기운이 역력했다. 이 때 분위기 메이커 팝핀현준씨는 몸풀기를 제안했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끝내자 티아라의 ‘롤리폴리’가 서울광장에 울려 퍼졌고, 수줍어하며 몸을 사리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었냐는 듯이 열심히 춤을 추었다. 그 간 각자 집에서 연습했던 안무 동작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보람을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행사에 힘든 발걸음을 해 준 장애인 댄스동아리 ‘몸짓다운’의 댄스는 그 누구의 것보다도 감동적이었다.

 
연예인들의 재능기부(Pro Bono)로 마련된 뜻깊은 축하공연은 이번 행사의 묘미였다. 팝핀현준이 이끄는 팝핀현준 크루의 현란한 팝핀댄스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가수 코요테, 에이핑크, 아이니가 함께한 열정적인 퍼포먼스 또한 서울광장을 빛내주었다.

 
하지만 정작 이 날의 주인공들은 무대 아래를 꿋꿋이 지키고 있었다. 지적장애인 아이들과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던 고려대학교 아이스하키팀의 선수들을 비롯한 많은 대학생들과, 네이버 해피빈의 자원봉사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궂은 날씨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현장을 지키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에서 스페셜 올림픽을 통해 변모해나갈 함께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필자는 행사 하루전, 이번 프로젝트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플래시몹의 안무를 기획·총괄한 공연예술가 팝핀현준씨와 이메일을 통해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팝핀 현준 (POPPIN HYUNJOON)


                                           (사진제공: 팝핀현준아트컴퍼니)

2013 평창 스페셜 동계올림픽은 어떤 행사인가요?
2013 평창 스페셜 동계올림픽은 지적발달 장애인과 함께하는 올림픽으로 사회적인 편견과 인식을 개선하서로 해하며 지구촌화합을 열어가는 대회입니다.

스페셜 올림픽에 대해 언제부터 알고 계셨는지요.
작년에 개최된 그리스 스페셜 하계올림픽 폐막식공연에 초청을 받아 공연한 것을 계기로 처음 알게 되었습
니다.

                                          ▶ 2011 그리스 스페셜 하계올림픽 세계대회 폐막식
                                             
무대를 장식한 팝핀현준 크루

춤 재능기부를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평소 팝핀현준, 그리고 팝핀현준 크루(CREW)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줄곧 청소년이나 어려운 이웃을 는 공연을 제작하거나 참여해왔습니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재능을 통해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 자신의 재능만큼 좋
은 자산은 없기에 기쁜 마음으로 재능기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안무를 기획하고 완성하면서 느끼신 점이 있다면.
사실 예전부터 다양한 플래시몹을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는 행사의 대부분에서 댄서가 메인이 되어 움직였기에 안무의 난이도 조정이 별문제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플래쉬몹 행사는 많은 사람들, 특히 지적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하는 안무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보다 쉽고, 대중적인 춤으로 꾸며보려고 특별히 더 많이 노력을 기울였던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만드는 매개체로서 ‘춤’이란?
춤은 인류가 생기면서 같이 만들어진 몸의 언어입니다. 예전엔 이 춤으로 하늘의 신과 연락을 하곤 하였다고 하죠. 그만큼 춤은 인류의 문화생활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말보다 글보다 더 풍부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고요. 본능적인 표현이나 소통은 춤이 최고죠!

지적장애인 댄스 동아리 ‘몸짓다운’과 함께 춤을 연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춤에 열정을 갖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그들의 장애는 비장애인들의 편견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도 그 배경이 문제가 되어선 안 된다"라는 말에 알 수 있듯이, 장애가 그들에게 '벽'이라는 존재로 남고 안 남고는 순전히 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노력의 결과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의 지적장애인을 위한 올림픽 개최가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이 좀 더 선진국화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죠. 이렇게 장애인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자리로서 스페셜 올림픽을 꾸준히 발전하시킨다면 언젠가 스페셜 올림픽 또한 기존의 올림픽에 버금가는 세계의 축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플래시몹을 기획하고, 공연도 가지는 입장에서 이번 행사를 통해 기대하는 목표나 효과는 무엇일지
알고 싶습니다.
“Together We Can”이라는 스페셜 올림픽의 대표 슬로건처럼 그 순간만은 우리 모두가 모여 하나 되는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사에 참여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스페셜올림픽이 어떤 대인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스페셜 올림픽의 희망적인
메시지를 함께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아직 스페셜 올림픽에 대해 잘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스페셜 올림픽은 세계속의 올림픽이며 또 대한민국 평창에서 조만간 함께하게 될 우리 모두의 축제입니다. 파이팅!


파고들기

그 첫번째 이야기: 시작부터 특별했던 올림픽




"장애가 있다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누군가의 기쁨이 될 수 있으며, 사랑과 자부심으로 세상을 채울 수 있습니다."
- Eunice Kennedy Shriver-

  스페셜올림픽은 故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누이동생인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Eunice Kennedy Shriver)여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유니스 여사와 지적발달장애를 가진 누이 로즈마리 케네디는 가족들과 함께 스포츠를 누리며 같이 성장하였다. 하지만 당시 로즈마리와 같은 지적장애인들에게 제공되는 스포츠의 기회나 프로그램들은 드물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기회와 경험을 가질 수 있다면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었던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여사는 1962년 미국 메릴랜드에서 지적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캠프를 연다.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Eunice Kennedy Shriver) 여사가 함께한 최초의 스페셜 올림픽(미국, 로라도)

  캠프를 지휘하는 과정에서 지적발달장애인들이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수준 이상으로 스포츠와 신체활동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이를 계기로 조셉 P. 케네디 주니어 재단의 후원을 받아 1968년 시카고의 솔져 필드(Soldier Field) 에서 제 1회 스페셜 올림픽 세계대회를 개최한다.

그 두번째 이야기: 스페셜 올림픽은 왜 스페셜한가?

  전세계 지적발달장애인(children and adults with intellectual disability) 들을 위한 국제 스포츠 대회. 스페셜 올림픽은 지적발달장애인을 위한 국제 스포츠 대회이면서 비영리 국제 스포츠 기구이다. 스페셜 올림픽은 지적발달장애인에게 지속적인 스포츠 훈련 기회를 제공하여, 운동능력과 사회 적응력을 향상시켜 생산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데 기여한다.
 
스페셜 올림픽은 동계 대회와 하계대회로 나뉘며, 다른 올림픽들과는 달리 2년마다 교대로 개최된다. 3위 안에 들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주를 이루는 여느 올림픽들과는 대조적으로 스페셜 올림픽은 특유의 훈한 경기방식을 자랑한다. 특히 이 대목에서는 스페셜 올림픽의 시상방식에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스페셜 올림픽에서는 전통적인 금, 은, 동메달 시상은 물론 4위에서부터 8위까지에 해당하는 모든 선수들의 도전과 노력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등수에 맞는 리본을 수여한다.
  우리에겐 조금 더 익숙한 또다른 장애인 올림픽인 '패럴림픽(Paralympics)'과 왜 이름이 다른걸까. 대회 참가자의 자격 제한 기준에 있어 둘은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스페셜 올림픽에는 지적장애를 가진 람들만이 선수로서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하지만 패럴림픽은 뇌성마비, 척추장애, 소아마비, 시각장애, 절단 및 기타장애를 가진 선수들을 모두 아우르는 대회이다.  또한 스페셜 올림픽에서는 스포츠훈련과 경기대회 전반에서 장애 정도에 관계없이 만 8세 이상의 모든 지적발달장애인들에게 그 문호가 개방되어 있는 면에 패럴림픽의 경우 대회 기준에 따라 선발된 엘리트선수들이 선수단의 주를 이루며 나이가 매우 어리거나 많은 선수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패럴림픽과 스페셜 올림픽에 필적하는 장애인 선수들의 축제로는 청각장애인들이 함께하는 '데플림픽(Deaflympics)'이 있다.

그 세번째 이야기: 2013 평창 스페셜 동계올림픽은?


       

 

  2013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는 127개국 3300여 명의 지적발달장애인 선수들이 7개의 올림픽 스포츠 종목(알파인 스키, 크로스컨트리, 스노우 보드, 스노우 슈잉, 스피드 스케이트, 피겨스케이트, 플로어 하키)에 참여하여 기량을 펼치고, 지역, 국경, 정치적 이념, 연령, 인종 그리고 종교장벽을 초월하여 함께 어울리는 인류 축제의 장이다. 2013년 대한민국 평창에서 개최될 제 10회 동계 스페셜올림픽은 일본, 중국에 이은 아시아권 세 번째 스페셜올림픽 유치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본 대회는 2013년 1월 26일(토)에서 2013년 2월 6일(수)까지 12일간 평창(알펜시아, 용평리조트)과 강릉(실내빙상경기장)을 주무대로 하여 펼쳐지며, 선수단의 경기 환경을 적응을 돕고 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라는 커다란 행사의 총체적인 시설을 점검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2013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세계
대회 프레대회'는 2012년 2월 21일(화)부터 25일(토)까지 5일간 본 대회에 앞서 열리게 된다. 

그 네번째 이야기: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2013 평창 스페셜 동계올림픽은 이란성 쌍둥이라고?! 

  두 차례 고배를 마신 끝에 평창이 2018 동계올림픽의 개최지로 선정되었던 그 날의 감동을 기억하는가. 그 때의 떨림을 기억하고 있는 여러분이라면 지금쯤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지 모르겠다. 둘 다 평창에서 개최되는 동계 올림픽인데 이름이 다르다. 게다가 하나는 2013년에, 또다른 하나는 2018년에 고작 5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간격으로 두고 열린다니........ 우리나라가 어느새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의 주무대가 된 것 같다는 이상하고도 오묘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평창이 선보일 두 번의 올림픽은 많이 닮았지만 분명 다르다. 같은 '올림픽'이니 만큼 그 기본 이념과 올림
픽 정신은 같이한다고 봐도 무리는 없겠다
. 하지만 대회의 내용이나 주인공들을 두고 비교해보았을 때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부터 두 올림픽은 다른 길을 걸어왔다. 동계올림픽의 차기 개최국이 당연히 스페셜
동계올림픽 또한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정답은 120퍼센트 '노(No)'다. 평창의 2013 스페셜 올림픽의  개최결정이 2008년에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어찌보면 우리나라에서 스페셜 동계올림픽은 기존 동계올림픽의 선배인 격이다. 각각의 유치위원회는 독립적으로 구성되었으며 다른 행보를 해왔기에 평창은 그 간 하나도 모자라 그 둘을 모두 지켜보느라 여러모로 부단한 노력을 쏟은 셈이다.
  앞서 말했듯이 스페셜 올림픽은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2년마다 하계와 동계대회가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데 비하여 일반
동계올림픽은 일반인 선수들이 참가하며 4년에 한 번씩 겨울 시즌에 개최된다. 물론 스페셜 올림픽과 일반 동계 올림픽서 진행되는 대회의 종목은 조금 다르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스페셜 올림픽에는 일반 동계 올림픽에는 존재하지 않는 '스노우슈잉(snowshoeing)'이라는 스포츠가 있다는 사실. 설원 위에서 펼쳐지는 마라톤, 스노우슈잉! 벌써부터 기대되지 않는가.


과 함께하는  한 방법!

STEP1: 스페셜 올림픽 만의 '비스포츠 프로그램 (Non-Sports Events)'에 참여해보면 어때?

1. 호스트타운 프로그램:
 
대회에 참여하는 선수단이 입국 후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문화를 체험하고 적응하기 위해 돕는 프로
그램으로서, 참여자가 숙소를 제공하면서 선수들이 우리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기후나 환경에도 미리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선수단과 지역사회의 청소년들과의 교류활동을 연계시키는 작업도 이에 포함된다.
 

2.
선수건강 프로그램:
선수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의료 자원 봉사를 의미한다. 대회 기간 동안 선수들이 필요로 하는 클리닉이나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데, 안과검진, 치과검진, 청각검사, 신체검사, 발 건강 검진 등 다양한 방면에
서 자신의 재능을 기부할 수 있다.

3. 전시회 & 엔터테인먼트:
스페셜올림픽이 세계인들의 교류와 축제의 장이니만큼 여러가지 전시회와 엔터테인먼트 활동이 함께 펼쳐진다. 이 때 활용될 수 있는 미술부터 과학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나 오락행사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활동을 돕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

4. 성화봉송:
성화봉송 없는 올림픽은 앙꼬없는 찐빵! 성화봉송이벤트에 참여하여 스페셜 올림픽에 대한 인식증대에 기여할 수 있으며, 후원 및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모금에도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 추후 신청자를 받아 참여자를 모집할 계획이라고 한다.

5. 어울림 교육프로그램:
지적장애인의 편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수용과 포용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하여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
로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6. 세계 청소년 회담:
우리나라와 외국의 장애/비장애 청소년 200~250명의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청소년을 위한 세미나, 교
이벤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7. 스페셜 올림픽 마을과 축제:
선수촌 중심 장소에서 다양한 오락, 체험활동, 교육프로그램 등이 진행된다.


STEP2: Be a Fan! 스페셜 올림픽의 팬이 되자!

  스페셜 올림픽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다면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해보는게 어떨까. 스페셜 올림픽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는 지적발달장애를 이해하고 선수단의 가족과 관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안내, 통역, 경기 운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수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지적 발달장애인들이 스포츠를 통해 얻는 성취감과 기쁨, 열정을 몸소 느낄 수 있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
이다.  
  만18세 이상(1995년 1월 25일 이전 출생자) 내ㆍ외국인 약 5000명을 13개 분야 33개 직종에 걸쳐 모집한
다. '리더자원봉사자'와 '일반자원봉사자'를 구분하여 선발한다는 점에 유의하도록 하자.

STEP3: 원더걸스, 김연아와 함께하는 10000 스페셜 해피 매칭 캠페인

  2013 평창 스페셜 올림픽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기부 커뮤니티인 해피빈과 함께 전 세계 120여 국의 스페셜올림픽 참가 선수단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스페셜 해피매칭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이번 캠페인은 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우리나라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후원할 기부금과 물품기증 신청을 받고 있다.이 외에도 선수단과 스탭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를 전하는 호스트타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 등에 주목해 볼 만 하다.    
 
  참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네이버 해피빈의 스페셜올림픽 해피매칭 캠페인 사이트
(http://2013special.happybean.naver.com/)에 접속한다. 


페이지에 나와있는 상세한 설명을 바탕으로 해피매칭 캠페인의 내용에 대해 충분히 숙지한뒤 자신의 참여 분야를 결정하도록 하자. 자원봉사는 자동으로 링크된 페이지에서 신청서를 작성하도록 되어있으며, 후원 신청의 경우 후원할 국가, 참여하게 된 계기 및 상세내용, 후원방법 등을 입력하면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사진제공: 2013 평창 스페셜 동계올림픽 (www.2013sopoc.org)>


진심 · 열심 · 동심이 선사하는 따뜻한 선물!

‘브레멘 음악대’ 와 가수 유열,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그렇게 하지 말라’고만 다그치는 어른들로 가득찬 한국 사회. 이 속에서 점차 폐쇄적인 개인으로 변해가는 한국의 학생들에게 뮤지컬을 통해 따뜻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어넣어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대학가요제 출신으로 우리들에게 친숙한 가수 유열 씨. 그는 요즘 구설에 오르고 있는 학교 왕따, 폭력 문제에 대해 “피해자, 가해자 모두가 아픈 친구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아동에 대한 철학적·문화적 교육이 결핍된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1996년 대한민국 동요대상에서 ‘동요를 사랑하는 가수상’을 수상,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의 진행자로도 나선 바 있는 유열 씨. 어린이와 청소년의 문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새로운 창작 뮤지컬을 발굴하는 프로듀서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그를 만나기 위해
유열 컴퍼니(YOOYEOL Company)를 찾았다. 

나팔과 뛰노는 아이, 하트와 음표. 그리고 형형색색의 ‘브레멘 음악대’의 아트워크까지. ‘Musical For KIDS & FAMILY'라는 구호 아래 다양한 어린이·가족 뮤지컬을 제작해온 유열 컴퍼니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브레멘 음악대’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됐다. 2012년 햇수로 벌써 7년차를 맞는 이 뮤지컬은 독일 브레멘 시로부터의 러브콜을 비롯하여 ‘2011 중국 상해 국제 아동극 페스티벌(2011 Shanghai International Children Theatre Festival)’의 개막작으로 초청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2012년 2월 3일, 자칫하면 마음까지도 얼어 버릴 듯한 매서운 추위속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작업으로 한창인 유열 컴퍼니는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가수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던 그가 아동·청소년 문화에 이토록 열정을 가지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제작자로서의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가수 유열 씨로부터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전 세계로 뻗어가는 ‘브레멘 음악대’ >

‘브레멘 음악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시죠.

 유열 컴퍼니의 첫 프로젝트인 ‘브레멘 음악대’는 독일 그림형제의 동화를 바탕으로 한 어린이 뮤지컬입니다. 올해로 이 뮤지컬은 7주년을 맞게 되는데요,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들은 물론, 초등학생, 부모님들까지도 많은 사랑과 관심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진 네 동물이 (동키-당나귀, 캐티, 고양이, 도기-강아지, 러스티-암탉) 같은 꿈을 바라보며 브레멘으로 향하는 여정을 그려 ‘함께’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에요. ‘함께라면 못할 것은 없으니 서로 귀 기울이고 같이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관람한 어린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극장을 나오는 정겨운 공연입니다.


외국에서도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브레멘 음악대’입니다.

 지난 8월, 23일간 중국 상해 한복판에서 펼쳐졌던 ‘2011 중국 상해 국제 아동극 페스티벌’에 우리나라 최초로 개막작으로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였습니다. 주최 측에서 행사 카탈로그와 포스터에 우리 뮤지컬의 scene들을 head로 실어주더군요. 총 8편 정도의 초청작 중에 ‘브레멘 음악대’가 가장 역동적이라고 하던가요. (웃음) 굉장히 뿌듯했죠. 우리의 것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니까요.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것이 과연 우리나라의 뮤지컬로 어떻게 중국아이들과 소통을 할 수 있을 까 하는 점이었어요. 그렇다고 모든 노래를 다 중국어로 부를 순 없잖아요? 그래서 대표적인 테마곡 몇 개만 중국어로 연습하고, scene과 scene 사이에 간간이 중국어 내레이션도 넣어보았지요. 그랬더니 정말로 통하더라고요. (공연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가리키며) 여기보세요. 중국 아이들이 신나서 고개도 까딱까딱 흔들고……. 반응 좋죠? (웃음)

중국에서 올해 또 다시 우리 ‘브레멘 음악대’를 초대해 주었어요. 이번엔 중국 배우로 공연을 제작해보고 싶다는 요청도 들어왔고요. 한국 콘텐츠의 일부인 ‘브레멘 음악대’를 통해 중국과의 교류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 뮤지컬로 비춰 본 우리의 아동·청소년 문화 >

어린이·가족 뮤지컬과 관련한 일을 시작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이 부분이 공연문화에 있어 아무래도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른들의 문화까지 건드리는 것은 아직 제게는 과한 욕심이 아닐까 싶어요.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도 한평생을 바쳐도 모자를 것 같거든요. (웃음)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린이·가족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유독 제가 뮤지컬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뮤지컬에는 모든 예술의 장르가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음악을 비롯한 무대장치, 안무, 영상, 배우들의 연기, 의상, 심지어는 조명 하나하나 까지도 뮤지컬을 이루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니까요. 이러한 예술의 총체가 매일 매일 live로 무대에 올라가고, 그것을 지켜보는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제겐 매우 설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공연 제작자의 눈으로 보는 우리나라의 아동·청소년 문화의 실태는 어떠한가요?

중국 공연을 하면서 느낀 점이 참 많아요. 중국은 50년대부터 ‘중국의 미래는 어린이에게 있다’는 신념하에 유치원과 극단 간의 교류가 매우 활성화 되었다고 해요. 유럽은 더하죠. 일단 분야가 가지각색이에요. 철학을 다룬 뮤지컬서부터 삶과 죽음, 환경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까지 무궁무진하죠. 또한 그곳에는 적어도 어린이극을 만드는 회사는 반드시 라이센스가 있어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어요. 그만큼 어린이극에 대한 제작자의 책임, 자격을 사회적으로 널리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겠지요?

 반면 한국에서는 제작비만 있다면 자격조건 상관없이 누구나 뮤지컬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연문화가 자연히 흥행위주로 퇴색되어 갈 수 밖에요. 우리나라의 주된 어린이 뮤지컬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대표적으로 뽀로로, 뿡뿡이, 파워레인저와 같이 인기 있는 캐릭터 위주의 상업물, 아니면 대학로 등에서 만드는 저예산 뮤지컬들이죠. 절대로 적은 예산을 투입했다는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에요. 적은 제작비를 들이더라도 심도 있는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거죠. 다양한 자극을 받아야 할 우리 아이들이 소위 말하는 극단적인 극들만 보면서 자란다는 게 뮤지컬 제작자의 입장에서 참 아득합니다. 이건 사실 굉장히 심각한 현실이거든요. 정부, 지자체, 기업, 개인의 제작비 후원이 풍부한 선진국과는 비교할 수 없이 우리나라의 아동극 제작 환경은 열악한 상황이고요.

 그래서 우리는 많은 고민을 거듭하여 뮤지컬을 만들고 있어요. 혹여 폭력적인 장면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지, 어린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는 없는지 계속해서 검토하죠. 지금은 ‘그림엄마’ 한젬마 작가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오은영 박사님께 자문을 구하고 있습니다.

 

                                                  (사진제공: 유열 컴퍼니)


< 가수 유열의 청소년 시절 >

가수 유열씨는 어떠한 청소년기를 보내셨을지 궁금합니다.

 별 걱정 없이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던 것 같아요. 제가 외아들이거든요. 아버님, 어머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어요. 친구들하고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였고요, 선생님들의 많은 기대를 받아왔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던 것이 항상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웃음)


청소년 시절 어려움을 겪으신 적은 없었는지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님 사업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완전히 zero base로 돌아간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제게 경제적 어려움의 충격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제 자신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지요.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했어요. 한 젊은 남자의 인생이 밑바닥부터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느낌이었달까? (웃음)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었죠. 공부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부터, 대학교 다니기 전에는 통기타를 치는 아르바이트도 해봤어요. 이때의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자연스럽게 가수가 되는 데 큰 자산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어려울 때 어떤 것이 중요한 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같은 위기를 겪더라도 ‘이번에도 한 번 재미있게 넘어가보자’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갖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 유열과 유열 컴퍼니 >

유열 씨는 평소에 많은 나눔 활동에 동참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해, 한 해가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사람은 결국 ‘함께’ 살아간다는 거예요. 내가 만나는 모든 인연들, 그것이 사람이 됐던 자연이 됐던 간에 모두 함께 지내면서 비로소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게 되는 것이잖아요? 나눔을 실천하시는 분들이 꼭 하시는 말이 있죠. 나눔은 ‘주고받는 것’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만큼 나눌 때에 얻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거죠.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한 거예요. 이웃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경제적·사회적 여건 상 나눌 수 없는 분들이 얼마나 많이 계시겠어요.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도 ‘나눔’의 마인드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고만으로 참된 사람이 된다면야 좋겠지만 그게 아니잖아요. 실질적으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선진국에 사는 아이들은 학교 curriculum에서는 물론이고 전반적인 사회시스템에서 자연스럽게 봉사나 나눔에 대해 학습할 수 있지만 우리 한국 사회는 아직 그 정도로 성숙하지는 못했다는 점이 조금 아쉽네요.

 
유열 컴퍼니의 향후계획, 앞으로 나아가야 할 목표는 무엇인가요?

 벌써 ‘브레멘 음악대’의 관객이 5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관객의 명수는 결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매년 조금씩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을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 이상 군더더기가 없다고 평가 받을 수 있는 좋은 귀감이자, 어른 관객이 더 좋아할 수 있는 어린이·가족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7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브레멘 음악대’와 함께 했던 만큼, 동화적 초심을 잃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될 부분이고요.

 3년 전부터 준비해온 유열컴퍼니의 두 번째 프로젝트가 곧 선을 보일 예정입니다. 바로 가족뮤지컬 ‘수궁 Fantasy'인데요, 한국과 미국의 작가, 작곡가가 머리를 맞대고 만든 예쁜 작품이에요. ’수궁가‘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 콘텐츠로 글로벌한 사람들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는 다채로운 뮤지컬을 만들어내는, 저의 새로운 도전입니다. 아리랑을 비롯한 우리 가락이 절묘하게 녹아 있는 이 뮤지컬의 음악에 많은 기대를 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어린이 문화에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심각한 한국의 아동·청소년 문화에 대해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서서 방관만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웃음)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족극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 문화적 시스템을 한국에도 도입해보고 싶습니다.


     

 


한국 땅에 다문화의 꿈이 모여 작은 희망의 씨앗을 이루다


‘다양한 문화가 모이는 어린이도서관 모두’

  
 
  한국이 단일민족 국가라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미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장기체류 외국인, 귀화자, 외국인자녀는 모두 126만 5006명(행정안전부· 2011년도 기준)을 넘어섰고, 이는 우리나라 전체 주민등록인구의 약 2.5%에 해당한다.

 
2008년 비로소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제정되어, 다문화 가정에 대한 양적 지원이나 서비스가 확충되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인들의 뿌리 깊은 편견을 감당하기에 그 효과는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에서의 청소년 집단 따돌림·폭행 문제에서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반증해주고 있다.

 
이미 다문화 사회로 발을 내디딘 한국. 2012년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다문화 사회를 맞이해야 할 이 시점에서 한국인들이 다문화 가정과 함께 어우러져 공생할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이 물음에 해답을 얻고자 다문화 가정과 한국 사회와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다문화 어린이 도서관 ‘모두’의 서울 ‘모두지기’ 성지연 씨와 인터뷰를 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문화 어린이 도서관 ‘모두’>


‘모두’가 생기게 된 배경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18년 전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시작한 ‘푸른 시민 연대’는 다문화가정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우리나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어머니학교(성인 문해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것이었어요. 비록 한국에 거주하지만, 전쟁, 가난 등 여건 상 우리나라 언어를 배울 기회가 없어서 불편을 겪는 여성분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이외에도 한국 이주 여성 및 외국인 이주노동자 지원 사업, 청소년사업, 지역 나눔 사업 등을 진행해오는 긴 여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바로 다문화 가정의 여성들과 어린이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그들이 함께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었죠. 더불어 이주여성들이 함께 아이를 키워나갈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왕이면 ‘책’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꿈을 갖고, 엄마나라에 대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에서 작은 도서관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름이 독특합니다.

주로 도서관을 사용하게 되실 이주여성들의 조언을 받아 정해진 이름입니다. 몇 가지 후보가 있었는데요, 여러 국가에서 오신 분들께 단어가 혹 부정적인 어감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발음하기에 불편함이 없는지 등을 여쭈어보고 결정했지요. 무엇보다 ‘모두’라는 단어에는 우리 도서관이 지향하는 바가 잘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서관의 상징이 흥미롭게도 ‘씨앗’ 모양이라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두’는 다문화 가정이 한국 사회에서 이슈화되기 이전부터 다문화 가정의 융합을 꿈꾸던 곳이에요. 그래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미미하였을 때 사업을 시작했고, 이 때 가졌던 작은 바람을 씨앗이라는 상징에 담게 되었어요. 뿌리를 내린 나무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서 점차 자라나듯이,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의 씨앗이 노력을 통해 줄기가 되고, 언젠가 결실의 열매를 맺기를, 그래서 결국에 한국이 우리가 원하는 조화로운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표현한 것이에요. ‘모두’가 첫 번째 씨앗을 묻었으니 ‘모두’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겨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졌으면 좋겠다,’ ‘이제 씨앗을 간직 했으니 누군가 관심을 갖고 우리와 함께 싹을 키워 나가겠지’ 이런 희망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죠.
 


<‘모두’의 책 >


다문화 가정이 한국 사회와 조화를 이루기 위한 매개체로서의 ‘책’의 의미는?

책에는 모든 게 담겨 있잖아요.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거창한 글이 아니라 쉽게는 어린이가 읽는 동화책부터 심지어는 단순한 그림책이라 할지라고도 아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책 속에 고스란히 나라의 문화가 반영되어있기 때문에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에게는 어릴 때부터 함께 하는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책을 통해 접한 다양한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책의 강점인 것 같아요.


‘모두’에는 어떠한 책들이 마련되어있나요?

 현재 '모두'가 100권 이상의 책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서 12개국 정도가 있습니다. 네팔, 몽골, 러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이란,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태국, 필리핀. 기타도서로는 프랑스, 캄보디아의 언어로 된 책, 여러 언어가 함께 등장하는 책들이 있어요. 분야는 동화부터 역사책, 요리책을 비롯한 실용서 까지 고르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방문하시는 분들이 보시고는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해서) 깜짝 놀라시곤 해요. (웃음)


책은 어떠한 경로를 통해 도서관에 배치되나요?

기증을 받기도 하고, 활동가나 여성분들이 현지에 방문했을 때 사다주시기도 해요. 다양한 국가의 책을 구해야 하다 보니 사실 어렵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의 경우는 국내도서와 달리 기증도 잘되지 않고, 흔하지가 않다보니 막막했죠. 현재는 주로 출판사를 통해 책을 구하고 있습니다.


<모두’와 우리>


‘모두’에서는 세계구연동화대회를 비롯한 다양한 다문화가정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도서관을 찾으시는 여성분들에게 가장 많이 말씀드리는 것이 자녀를 엄마나라의 언어로 가르치시라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 여성분들은 자국의 언어를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세요. 어차피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아이니까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것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설령 어머니들이 자신의 모국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해도 그것을 반대하는 한국인 가족들(남편, 시어머니) 때문에 포기하기 십상이에요.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엄마나라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되는 거죠. 어머니의 국적에 대해 창피함을 느끼고 더 멀어지려 하는 거예요. 이러다 보니 ‘사랑해’, ‘좋아해’와 같은 긍정적인 말을 듣고 자라야 할 나이에 한국어에 서툰 엄마로부터 언어 자극을 받지 못하게 되고, 이러한 현상이 엄마와의 소통을 넘어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의 문제를 낳게 됩니다. 결국 한국에 살면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자연히 학업성적이 떨어지고요, 친구와의 관계도 소원해지게 되는 것이죠.
 
이 문제를 조금이나마 없애보자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 아이들에게 이중 언어(한국어+모어)를 교육하는 캠페인인데요, 그 일환으로 작년으로 3회 째를 맞은 ‘세계구연동화대회’와 ‘함께 떠나는 엄마나라 동화여행’ 등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세계구연동화대회의 경우 지역 주민을 비롯한 도서관의 다문화 가정 식구들이 참가해 자신의 나라의 동화를 들려줌으로써 서로의 문화에 대해 알아가고, 함께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모두’는 이 프로그램이 언젠가 이 지역의 축제로 거듭났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에는 보통의 한국 청소년들과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 간의 교제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는지요?

모두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 자체가 서로 어우러져서 살아가자는 취지에서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함께하도록 진행되고 있어요.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주로 도서관을 찾는 친구들이 어린 연령대이기는 하지만, 도서관에 다니면서 청소년이 되어가는 친구들도 있고요, 도서관을 찾는 청소년들도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모두’의
나눔에 동참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현재 ‘모두지기’ 세 분이 계시지만, 우리 도서관은 자원 활동가분들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한 곳이에요. 그만큼 할 일이 많다는 거죠. 고맙게도 많은 청소년 자원 활동가 분들이 도서관을 찾아주고 계세요. 그 분들이 ‘모두’를 도울 수 있는 길은 매우 다양합니다. 가장 중요한 도서관 내 청소부터 서가 정리, 도서 분류, 바코드 태그를 붙이기 등등. ‘나만의 책 친구’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친해질 수도 있고요, 언어에 재능이 있다면 번역을 해줄 수도 있겠죠. 이 외에도 그림을 잘 그린다거나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면 재능기부도 할 수 있고, 특별히 모두에서 이러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안건을 내서 동의를 받으면 실행에 옮길 수도 있습니다. 다만 모두를 찾는 청소년들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라든지, 자신의 스펙을 쌓겠다는 마음가짐만으로 도서관에 오지는 말았으면 한다는 거예요.


<모두’의 등대, 모두지기>


도서관의 운영에서 겪은 어려움이 있다면.

사실 도서관의 꿈을 이루는 과정이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았어요. 도서관을 짓는데 필요한 게 아주 많잖아요? 일단 도서관을 지을 공간이 있어야 하고, 책이 마련되어야 하고, 도서관 모양을 디자인해야 하고. 그래서 후원을 받기 위해 여러 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매번 거절당했죠. 가장 큰 걸림돌은 한국 사람들의 다문화 가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었습니다. 외국인을 위해 투자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어요. 다문화 가정의 여성들과 아이들은 외국인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한국의 미래이고, 어머니들은 그 아이들을 길러주시는 고마우신 분들이니까요.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에 만연한 비뚤어진 시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졌고, 그러던 찰나 STX라는 기업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부터 도움의 손길을 받아 오늘날의 ‘모두’ 도서관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이 생겼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지원하다보니 재정적인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모두의 꿈을 위해서 어려움도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극복할 수 있었고, 점차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의 후원이 늘어서 지금은 예전에 비해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렇다면 ‘모두’에서 느끼는 가장 보람된 순간은 언제일지 궁금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볼 때에요. 특히 아이들이 도서관에 오면서 점차 변화해가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뿌듯하죠. 아이들이 책을 읽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서로 느낀 바를 공유하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글쎄 4학년 어린이가 더 작은 꼬마에게 책을 읽어주더라고요. 우리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이 모두 책을 읽기 위해서 오는 것은 아니에요. 어떤 아이는 딱히 갈 곳이 없어서 오기도 하구요,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오는 친구들도 있죠. (웃음) 그래서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간혹 싸움이 나기도 하고, 장난꾸러기들도 많아요. 그런데 도서관에 꾸준히 다니면서 그런 친구들의 태도가 점점 달라지는 거예요. 이를 테면 늘 책장에 올라가서 책을 가지고 장난만 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는 손에 잡히지 않는 책을 뽑기 위해 책장에 올라서는 거죠.
 
또 우리 도서관에는 많은 자원 활동가 분들이 계세요. 그 분들이 묵묵히 자신의 일에 열중하시는 모습, 도서관의 아이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볼 때 행복합니다.
 
2011년에 모두의 타이틀은 ‘당신의 힘을 믿습니다.’였어요. 책 읽는 사람들의 힘을 믿고, 이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힘을 믿고,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힘을 믿는다는 메시지이죠. 이 슬로건이 담고 있는 의미처럼 도서관의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고 나누는 것을 목격했을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모두’와 함께 이루고자 하는 2012년 새해의 꿈, 더 나아가 ‘모두’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함께하고, 서로 나누는 거죠. 혼자서 많이 나아가려고 하기 보다는 함께 잘 지내기 위해 손을 잡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도서관을 처음에 만들기로 했던 마음 그대로 차별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에는 ‘다양한 문화’인 다문화를 ‘다른 나라의 문화’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색안경을 벗고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는 성숙한 문화가 생겨야 합니다. 더 많은 분들이 모두의 뜻에 동참했으면 좋겠고, 머지않아 한국 사회의 미래를 짊어지게 될 청소년들이 모두를 통해 더 크게 세상을 볼 수 있기를 바라요. 도서관을 위한 공간이 확보되고, 개선되어서 ‘모두’가 더 원활하게 운영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꿈도 갖고 있답니다. (웃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인터뷰 내내 도서관을 사랑방에 비유하고, 방학을 맞아 바빠진 업무와 잦은 야근에도 ‘이게 도서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이야기하는 성지연 씨의 목소리에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넘쳐났다. 

 
도서관 ‘모두’의 꿈은 결국 우리 ‘모두’의 꿈이다. 이는 다양한 문화에서 더 큰 미래를 준비하는 한국인들의 정신적 성숙을 의미한다. 이런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우리 청소년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지연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사진제공: 다양한 문화가 모이는 어린이도서관 모두 www.modoo.or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