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 다문화의 꿈이 모여 작은 희망의 씨앗을 이루다


‘다양한 문화가 모이는 어린이도서관 모두’

  
 
  한국이 단일민족 국가라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미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장기체류 외국인, 귀화자, 외국인자녀는 모두 126만 5006명(행정안전부· 2011년도 기준)을 넘어섰고, 이는 우리나라 전체 주민등록인구의 약 2.5%에 해당한다.

 
2008년 비로소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제정되어, 다문화 가정에 대한 양적 지원이나 서비스가 확충되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인들의 뿌리 깊은 편견을 감당하기에 그 효과는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에서의 청소년 집단 따돌림·폭행 문제에서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반증해주고 있다.

 
이미 다문화 사회로 발을 내디딘 한국. 2012년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다문화 사회를 맞이해야 할 이 시점에서 한국인들이 다문화 가정과 함께 어우러져 공생할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이 물음에 해답을 얻고자 다문화 가정과 한국 사회와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다문화 어린이 도서관 ‘모두’의 서울 ‘모두지기’ 성지연 씨와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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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어린이 도서관 ‘모두’>


‘모두’가 생기게 된 배경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18년 전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시작한 ‘푸른 시민 연대’는 다문화가정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우리나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어머니학교(성인 문해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것이었어요. 비록 한국에 거주하지만, 전쟁, 가난 등 여건 상 우리나라 언어를 배울 기회가 없어서 불편을 겪는 여성분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이외에도 한국 이주 여성 및 외국인 이주노동자 지원 사업, 청소년사업, 지역 나눔 사업 등을 진행해오는 긴 여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바로 다문화 가정의 여성들과 어린이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그들이 함께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었죠. 더불어 이주여성들이 함께 아이를 키워나갈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왕이면 ‘책’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꿈을 갖고, 엄마나라에 대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에서 작은 도서관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름이 독특합니다.

주로 도서관을 사용하게 되실 이주여성들의 조언을 받아 정해진 이름입니다. 몇 가지 후보가 있었는데요, 여러 국가에서 오신 분들께 단어가 혹 부정적인 어감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발음하기에 불편함이 없는지 등을 여쭈어보고 결정했지요. 무엇보다 ‘모두’라는 단어에는 우리 도서관이 지향하는 바가 잘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서관의 상징이 흥미롭게도 ‘씨앗’ 모양이라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두’는 다문화 가정이 한국 사회에서 이슈화되기 이전부터 다문화 가정의 융합을 꿈꾸던 곳이에요. 그래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미미하였을 때 사업을 시작했고, 이 때 가졌던 작은 바람을 씨앗이라는 상징에 담게 되었어요. 뿌리를 내린 나무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서 점차 자라나듯이,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의 씨앗이 노력을 통해 줄기가 되고, 언젠가 결실의 열매를 맺기를, 그래서 결국에 한국이 우리가 원하는 조화로운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표현한 것이에요. ‘모두’가 첫 번째 씨앗을 묻었으니 ‘모두’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겨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졌으면 좋겠다,’ ‘이제 씨앗을 간직 했으니 누군가 관심을 갖고 우리와 함께 싹을 키워 나가겠지’ 이런 희망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죠.
 


<‘모두’의 책 >


다문화 가정이 한국 사회와 조화를 이루기 위한 매개체로서의 ‘책’의 의미는?

책에는 모든 게 담겨 있잖아요.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거창한 글이 아니라 쉽게는 어린이가 읽는 동화책부터 심지어는 단순한 그림책이라 할지라고도 아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책 속에 고스란히 나라의 문화가 반영되어있기 때문에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에게는 어릴 때부터 함께 하는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책을 통해 접한 다양한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책의 강점인 것 같아요.


‘모두’에는 어떠한 책들이 마련되어있나요?

 현재 '모두'가 100권 이상의 책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서 12개국 정도가 있습니다. 네팔, 몽골, 러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이란,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태국, 필리핀. 기타도서로는 프랑스, 캄보디아의 언어로 된 책, 여러 언어가 함께 등장하는 책들이 있어요. 분야는 동화부터 역사책, 요리책을 비롯한 실용서 까지 고르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방문하시는 분들이 보시고는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해서) 깜짝 놀라시곤 해요. (웃음)


책은 어떠한 경로를 통해 도서관에 배치되나요?

기증을 받기도 하고, 활동가나 여성분들이 현지에 방문했을 때 사다주시기도 해요. 다양한 국가의 책을 구해야 하다 보니 사실 어렵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의 경우는 국내도서와 달리 기증도 잘되지 않고, 흔하지가 않다보니 막막했죠. 현재는 주로 출판사를 통해 책을 구하고 있습니다.


<모두’와 우리>


‘모두’에서는 세계구연동화대회를 비롯한 다양한 다문화가정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도서관을 찾으시는 여성분들에게 가장 많이 말씀드리는 것이 자녀를 엄마나라의 언어로 가르치시라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 여성분들은 자국의 언어를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세요. 어차피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아이니까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것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설령 어머니들이 자신의 모국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해도 그것을 반대하는 한국인 가족들(남편, 시어머니) 때문에 포기하기 십상이에요.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엄마나라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되는 거죠. 어머니의 국적에 대해 창피함을 느끼고 더 멀어지려 하는 거예요. 이러다 보니 ‘사랑해’, ‘좋아해’와 같은 긍정적인 말을 듣고 자라야 할 나이에 한국어에 서툰 엄마로부터 언어 자극을 받지 못하게 되고, 이러한 현상이 엄마와의 소통을 넘어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의 문제를 낳게 됩니다. 결국 한국에 살면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자연히 학업성적이 떨어지고요, 친구와의 관계도 소원해지게 되는 것이죠.
 
이 문제를 조금이나마 없애보자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 아이들에게 이중 언어(한국어+모어)를 교육하는 캠페인인데요, 그 일환으로 작년으로 3회 째를 맞은 ‘세계구연동화대회’와 ‘함께 떠나는 엄마나라 동화여행’ 등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세계구연동화대회의 경우 지역 주민을 비롯한 도서관의 다문화 가정 식구들이 참가해 자신의 나라의 동화를 들려줌으로써 서로의 문화에 대해 알아가고, 함께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모두’는 이 프로그램이 언젠가 이 지역의 축제로 거듭났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에는 보통의 한국 청소년들과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 간의 교제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는지요?

모두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 자체가 서로 어우러져서 살아가자는 취지에서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함께하도록 진행되고 있어요.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주로 도서관을 찾는 친구들이 어린 연령대이기는 하지만, 도서관에 다니면서 청소년이 되어가는 친구들도 있고요, 도서관을 찾는 청소년들도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모두’의
나눔에 동참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현재 ‘모두지기’ 세 분이 계시지만, 우리 도서관은 자원 활동가분들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한 곳이에요. 그만큼 할 일이 많다는 거죠. 고맙게도 많은 청소년 자원 활동가 분들이 도서관을 찾아주고 계세요. 그 분들이 ‘모두’를 도울 수 있는 길은 매우 다양합니다. 가장 중요한 도서관 내 청소부터 서가 정리, 도서 분류, 바코드 태그를 붙이기 등등. ‘나만의 책 친구’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친해질 수도 있고요, 언어에 재능이 있다면 번역을 해줄 수도 있겠죠. 이 외에도 그림을 잘 그린다거나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면 재능기부도 할 수 있고, 특별히 모두에서 이러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안건을 내서 동의를 받으면 실행에 옮길 수도 있습니다. 다만 모두를 찾는 청소년들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라든지, 자신의 스펙을 쌓겠다는 마음가짐만으로 도서관에 오지는 말았으면 한다는 거예요.


<모두’의 등대, 모두지기>


도서관의 운영에서 겪은 어려움이 있다면.

사실 도서관의 꿈을 이루는 과정이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았어요. 도서관을 짓는데 필요한 게 아주 많잖아요? 일단 도서관을 지을 공간이 있어야 하고, 책이 마련되어야 하고, 도서관 모양을 디자인해야 하고. 그래서 후원을 받기 위해 여러 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매번 거절당했죠. 가장 큰 걸림돌은 한국 사람들의 다문화 가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었습니다. 외국인을 위해 투자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어요. 다문화 가정의 여성들과 아이들은 외국인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한국의 미래이고, 어머니들은 그 아이들을 길러주시는 고마우신 분들이니까요.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에 만연한 비뚤어진 시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졌고, 그러던 찰나 STX라는 기업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부터 도움의 손길을 받아 오늘날의 ‘모두’ 도서관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이 생겼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지원하다보니 재정적인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모두의 꿈을 위해서 어려움도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극복할 수 있었고, 점차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의 후원이 늘어서 지금은 예전에 비해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렇다면 ‘모두’에서 느끼는 가장 보람된 순간은 언제일지 궁금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볼 때에요. 특히 아이들이 도서관에 오면서 점차 변화해가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뿌듯하죠. 아이들이 책을 읽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서로 느낀 바를 공유하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글쎄 4학년 어린이가 더 작은 꼬마에게 책을 읽어주더라고요. 우리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이 모두 책을 읽기 위해서 오는 것은 아니에요. 어떤 아이는 딱히 갈 곳이 없어서 오기도 하구요,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오는 친구들도 있죠. (웃음) 그래서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간혹 싸움이 나기도 하고, 장난꾸러기들도 많아요. 그런데 도서관에 꾸준히 다니면서 그런 친구들의 태도가 점점 달라지는 거예요. 이를 테면 늘 책장에 올라가서 책을 가지고 장난만 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는 손에 잡히지 않는 책을 뽑기 위해 책장에 올라서는 거죠.
 
또 우리 도서관에는 많은 자원 활동가 분들이 계세요. 그 분들이 묵묵히 자신의 일에 열중하시는 모습, 도서관의 아이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볼 때 행복합니다.
 
2011년에 모두의 타이틀은 ‘당신의 힘을 믿습니다.’였어요. 책 읽는 사람들의 힘을 믿고, 이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힘을 믿고,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힘을 믿는다는 메시지이죠. 이 슬로건이 담고 있는 의미처럼 도서관의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고 나누는 것을 목격했을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모두’와 함께 이루고자 하는 2012년 새해의 꿈, 더 나아가 ‘모두’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함께하고, 서로 나누는 거죠. 혼자서 많이 나아가려고 하기 보다는 함께 잘 지내기 위해 손을 잡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도서관을 처음에 만들기로 했던 마음 그대로 차별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에는 ‘다양한 문화’인 다문화를 ‘다른 나라의 문화’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색안경을 벗고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는 성숙한 문화가 생겨야 합니다. 더 많은 분들이 모두의 뜻에 동참했으면 좋겠고, 머지않아 한국 사회의 미래를 짊어지게 될 청소년들이 모두를 통해 더 크게 세상을 볼 수 있기를 바라요. 도서관을 위한 공간이 확보되고, 개선되어서 ‘모두’가 더 원활하게 운영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꿈도 갖고 있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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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내내 도서관을 사랑방에 비유하고, 방학을 맞아 바빠진 업무와 잦은 야근에도 ‘이게 도서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이야기하는 성지연 씨의 목소리에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넘쳐났다. 

 
도서관 ‘모두’의 꿈은 결국 우리 ‘모두’의 꿈이다. 이는 다양한 문화에서 더 큰 미래를 준비하는 한국인들의 정신적 성숙을 의미한다. 이런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우리 청소년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지연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사진제공: 다양한 문화가 모이는 어린이도서관 모두 www.modo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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