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운동화, 희망 전달?
문학을 공부하는 탓인지 베트남 여정의 소감을 시로 표현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사실 문학을 공부하는 것과 시를 쓰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평소에 혼자 시 쓰고 읽는 것을 좋아해서 흔쾌히 수락했다. 여정에 관한 뻔한 시를 쓰기보다는 우리 팀이 가져야 할 근본적인 문제의식에 관해 생각해보고, 이를 시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희망 전달에 관하여 김다훈 진심을 담지 않고 멋진 말을 통해 마음을 꾸미는 것은 참 쉬운 일이다 가령, 제대로 된 사랑 한번 해본 적 없는 이가 구슬픈 빗소리에 취해, 빗방울 방울마다 떠나간 사랑이 맺힌다느니 그러기는 어렵지 않다 첫 날 아침 해가 떠오를 때 문득, 나는 내게 물어 보았다 우리가 진짜 희망을 전달할 수 있냐고 단지 몇 켤레의 운동화를 전달해주고 며칠의 만남을 갖고 몇 분의 공연을 한 것을 희망을 전달했다고 스스로 꾸미고 확대시켜 생각하며 달콤한 자기만족을 하는 것은 아닌가 며칠을 보내고 마지막 저녁놀이 질 때 나는 내게 답할 수 있었다 우리는 희망을 전달할 수 없었다고 아니, 애초에 희망은 전달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희망은 다만, 함께 만드는 것이라고 우리는 희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함께 그것을 만들어 갔다 운동화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랑이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안에서 느껴졌던 이해가 서로를 보던 눈빛과 함께 춤추었던 몸짓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희망을 담은 운동화를 전달해주고 한국의 전통춤과 태권도 공연을 한 활동들 모두 뜻깊고 보람찬 활동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활동의 의미를 희망 전달이라는 우리의 목표와 동치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좀 더 비판적이고 엄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봉사를 하는 것도 결국은 자기만족에서 기인하는 부분이 크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식해보면, 우리들도 우리의 목표의식 때문에 실제와는 상관없이 우리 활동의 의미를 과장하고 확대하여 해석하기 십상인 것이다. 나는 여정 초기부터 끝까지 두 가지의 개인적 고민을 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우리의 활동이 정말 희망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두 번째는 어떻게 운동화라는 사물이 희망을 상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아직도 명확하고 뚜렷한 답을 내릴 수는 없고, 그런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첫 번째 고민에 대한 나만의 어렴풋한 답은 후에(Hue) 지역에서 아이들과 뛰놀 때 찾을 수 있었다. 운동화 전달식을 한 후, 아이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놀면서 어떤 뭉클한 감동이 전해져왔다. 그 감동은 평소 책을 읽으며 느껴왔던 지적 감동과는 종류가 다른 것이었다. 아이들과 내가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눈짓, 몸짓으로 서로를 알아가고 손을 잡고 춤추며 어떤 것을 공유하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나라의 아이들이지만 국적과 성별과 나이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랑스러움이 아이들에게서 느껴졌다. 그 때, 우리 원정단이 전달하고자 했던 것, 아니 서로가 주고받아야 할 것이 바로 이 느낌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운동화에 그림을 그리며 주고자 했던 것, 우리가 한 달 동안 부채춤과 태권도 연습을 하며 그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그 느낌과 감동, 사랑이며 이는 이윽고 희망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희망 전달에 관해 내 생각이 정리되고 나니 자연스레 운동화의 상징적 의미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바쁜 삶에 지친 사람들이 시간을 투자해가며 외국의 아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사랑과 희망은, 어쩌면 두 국가 사이의 먼 거리만큼이나 쉽게 전달되기 힘들 것이다. 비단 각자의 단편적인 활동으로 끝나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운동화를 신으면 달릴 수 있다. 사람들의 예쁘고 건강한 마음들은 운동화를 신고 아이들에게 달려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의 운동화가 모일수록 운동화에 담긴 마음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그 결과 희망이 금방 싹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왜 우리가 운동화에 희망을 담아야 했는지를 말해주는 부분이다. 문득 미지센터라는 단체의 철학과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수익 창출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막연히 베풀기만 하는 시민단체도 아닌 미지센터가 청소년들의 문화교류를 지원하면서 이루어내고자 하는 목표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주 뚜렷하게 보이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답을 말해주는 것은 바로 변화된 내 자신이었다. 처음에는 문화교류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내가 어느새 다른 나라의 아이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기억하고 있었고 나아가 ‘다름’을 대하는 나의 태도 자체가 바뀌고 있었다. 만약 한 단체가 활동을 통해 개인의 내면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단체의 목표로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순간 느꼈던 감동과 기억이 종종 나를 스쳐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어쩌면 편협한 시각으로 내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미래의 나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아직은 좀 더 넓은 곳을 바라보고 싶고, 앞으로도 그런 시각과 마음을 갖추고 살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미지 베트남 희망 원정단은 내 마음을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이었고, 기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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