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방법 ** 

 

1) 참여하고자 하는 수업 국가('베트남' 혹은 '키르기스스탄')를 선택해 주세요.

 


 
 

2) '이름 / 나이(혹은 학년) / 전화번호 / 수업 듣고 싶은 국가 / '오늘의 국가'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

      댓글로 남겨 주세요. 

      예) 구미지 / 초5 / 010-1234-5678 / 베트남 / 쌀국수를 정말 좋아해서 베트남이 어떤 나라일지가 궁금해요! 

           구솔지 / 13살 / 010-8765-4321 / 키르기스스탄 / 처음 들어보는 나라 이름이 특이해서 신청합니다ㅋ

 

3) 수업 이틀 전인 목요일(5/25), 수업참여 확정문자를 받습니다.

     ※ 확정 후 무단으로 불참하는 경우 이후 프로그램 참여가 제한됩니다. 

 

4) 수업 당일 오전 10시 45분까지 미지센터에 도착하여 참가비 5,000원을 납부합니다.

 

5) 워크북과 국기스티커를 받은 후 수업이 진행되는 방에서 오늘의 선생님을 기다립니다. =D

 

 

 베트남으로 떠난 ‘Thông Thông 베’, 첫 항해 마치고 귀국

 

희망의 운동화 전달 경과보고 & 미지 베트남 희망원정단 활동 -

 

 

 

 

   베트남에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떠났던 미지 베트남 희망원정단 ‘Thông Thông 베’ 성공적인 항해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약 3주간의 사전모임을 통해 출항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닻을 올린 ‘Thông Thông 베’의 단원 10명은 2월 19일부터 6박 7일 간 베트남 하노이 및 훼 지역에서 희망의 운동화 전달식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교류활동을 경험하고 돌아왔는데요, 베트남이라는 희망의 바다에서 우리가 건져 올린 두 단어는 ‘사람’ 그리고 ‘성장’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

 

지난 한 해 동안 ‘찾아가는 희망의 운동화 365’ 및 ‘희망의 운동화 나눔축제’를 통해 여러분이 마음을 담아주신 운동화 2,368켤레가 베트남에 성공적으로 전달되었습니다.

 

베트남 훼(Hue) 성 빈디엔 군에서 열린 ‘희망의 운동화 전달식’ 때 전달된 약 700켤레를 포함하여, 희망의 운동화는 베트남 아동인권보호 NGO인 ‘VAPCR(Vietnam Association for Protection of Child Rights)의 도움을 받아 베트남 내 총 17개 지역의 아동, 청소년들에게 무사히 전달되었습니다. 이러한 임무를 완수하는 과정에서 미지 베트남 희망원정단원들은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함께 웃고 부대끼고 생각했고, 사람을 배우고 관계를 느끼고 스스로를 이해하고 돌아왔습니다.

 

 

 

 

성장.

 

미지 베트남 희망원정단은 올해 첫 발을 내딛은 프로그램으로, 희망의 운동화만 현지에 전해주던 기존의 방식에서 나아가 인적 교류를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한 문화교류, 궁극적으로는 ‘아시아 희망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목표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이다보니 실무자뿐만 아니라 참가자들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작의 고통을 겪어야 했고, 여러 시행착오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Thông Thông 베’ 10명의 단원들은 열정과 의지로 가득 찼던 사전모임과 즐겁고 신나는 현지 활동 속에서 늘 자신들의 활동 목표와 가치를 잊지 않고 방향을 잘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장기간에 걸쳐 주체적으로 활동을 기획하고,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해나가며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스스로의 결과물을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기획자로서, 실행가로서, 혹은 건강한 청년이자 성숙한 세계시민으로서 조금 더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미지 희망원정단은 매년 ‘희망의 운동화’ 프로젝트와 연계하여 진행되면서 끊임없는 성장과 변화를 거듭해나갈 예정입니다. 운동화라는 하나의 매개를 바탕으로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고 그것이 단단한 하나의 고리가 되어 ‘아시아 희망 네트워크’로 확장될 때까지, 그래서 보다 많은 미지인들이 아시아 희망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여 건강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때까지 말입니다.

 

성공적인 두 번째 항해를 위해 고민과 노력을 계속해나갈 미지 희망원정단의 활약을 기대해주세요!

 

희망은 "Thông Thông 베"를 타고

 

미지 베트남 희망원정단, 2.19~25일까지 하노이에서 활동

 

 

 

 

‘Thông Thông 베’는 베트남에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떠나는 ‘미지 베트남 희망원정단’의 별칭입니다.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10명의 대학생 참가자들이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직접 지은 명칭인데요, ‘통하다, 이해하다‘라는 뜻의 베트남어 'Thông'을 활용하여, 서로 진심으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문화교류활동을 펼치고 오겠다는 우리 원정단의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희망의 운동화 나눔축제’와 연계하여 진행되는 ‘미지 베트남 희망원정단’ 프로그램은, 2월 19일부터 25일까지 6박 7일간 베트남 하노이 및 소수민족 마을 일대에서 진행됩니다.

 

 2012년 한 해 동안 시민들이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꾸민 희망의 운동화는 총 2,368켤레인데요, 미지 베트남 희망원정단은 이 운동화를 필요로 하는 베트남 산악지역 아동들에게 전달해줌과 동시에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또 베트남의 문화를 배우고 오는 문화사절단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시혜와 수혜 관계의 봉사 개념을 넘어서서 서로 다른 문화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소통하는, 나아가 전 지구적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계시민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것이 이번 원정단의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Thông Thông 베’ 단원들은 베트남에 대한 자료조사 및 특강은 물론이고 한국 문화를 보다 재미있게 소개하고 전달하기 위한 공연 기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파란 베트남 하늘에 샛노란 희망의 별을 띄울 'Thông Thông 베’의 활약을 기대해주세요!

 

 

 

 

 

 

 

 

2013 미지 베트남 희망원정단 참가자 모집 안내문.pdf

 

2013 미지 베트남 희망원정단 참가지원서(이름).hwp

 

사회배려청소년 선발기준 및 증빙서류 목록.pdf

아시아 청소년 지도자 워크숍


Hanoi, Vietnam

2012년 11월 12일~14일


서울시의 후원 아래, 베트남의 청소년 기관인 Youth International Cooperation Development Center (CYDECO) of Central Ho Chi Minh Communist Union 와 협력하여 개최된 이번 워크숍에는 베트남의 청소년 지도자 및 관련 실무자 30명이 참가하여,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과 사이버 문화" 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장근영 박사와 광진 아이윌센터 안영혜 팀장 등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아시아 청소년 지도자 워크숍


Hanoi, Vietnam

2012년 11월 12일~14일


서울시의 후원 아래, 베트남의 청소년 기관인 Youth International Cooperation Development Center (CYDECO) of Central Ho Chi Minh Communist Union 와 협력하여 개최된 이번 워크숍에는 베트남의 청소년 지도자 및 관련 실무자 30명이 참가하여,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과 사이버 문화" 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장근영 박사와 광진 아이윌센터 안영혜 팀장 등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아시아 청소년 지도자 워크숍


Hanoi, Vietnam

2012년 11월 12일~14일


서울시의 후원 아래, 베트남의 청소년 기관인 Youth International Cooperation Development Center (CYDECO) of Central Ho Chi Minh Communist Union 와 협력하여 개최된 이번 워크숍에는 베트남의 청소년 지도자 및 관련 실무자 30명이 참가하여,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과 사이버 문화" 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장근영 박사와 광진 아이윌센터 안영혜 팀장 등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장근영 박사님의 강연 모습입니다. '디지털 세대와 세대차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해주셨습니다.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에는 참가자들끼리 빨리 친해질 수 있도록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가위바위보를 하고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스티커를 붙여줬어요-

광진 아이윌센터 안영혜 팀장님의 강연 모습입니다. 서울시의 인터넷 중독 정책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한국과 같은 아픔을 가진 그들, 베트남

전쟁 참전 할아버님께서 하시는 말씀, “고맙습니다, 한국

 

 

2차 인도차이나 전쟁(베트남 전쟁)’이라고 불리는 베트남과 미국 간의 전쟁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상징이었다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은 남베트남을 미국이, 북베트남을 소련이 각각 지배하고 있던 당시, 미국이 베트남 전역을 민주주의로 바꾸겠다는 명분으로 일으킨 전쟁이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 동안 일어난만큼 그 전쟁의 참혹성과 베트남에 남긴 상처들은 어마어마하다.

 

베트남의 제 2의 수도라 불리는 호치민시(옛 사이공)에는 그 흔적들을 고스란히 보관해 놓은 곳이 있는데, 바로 전쟁기념박물관(War Remnants Museum)이다.

 

 

1975 9 4일에 개관한 전쟁기념박물관은 당시 전쟁범죄를 고발하고, 전쟁이 없는 세상 즉 'no to war- yes to peace'를 이념으로 삼고 있다. 전쟁기념박물관에는 7가지 테마로 나누어진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 소개>

 

첫번째 전시관 : 역사적 사실(베트남 전쟁에 대한 정보)을 전시

두번째 전시관 : 베트남 전쟁중 사망한 기자(11개국가에서 온 134명의 기자)들이 찍은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 전시관

세번째 전시관 : 일본인 사진작가인 분요 이시카와(bunyo Ishikawa)와 나카무라 고로(Nakamura Goro)씨의 사진 전시관, 베트남 전쟁의 참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네번째 전시관 : 전쟁중 잡힌 베트남 포로들을 어떻게 고문했는지를 보여주는 야외 전시관

다섯번째 전시관 : ‘폭력적인 전쟁의 실상이라는 주제로 베트남 사람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 미군들의 충격적인 사진들이 전시

여섯번째 전시관 : 세계평화를 원한다는 어린아이들의 그림들을 전시

일곱번째 전시관 : 전세계사람들이 베트남전쟁 당시 많은 피해를 본 베트남을 위로하고 지지한다는 주제로 전시

 

 

박물관 자료에 의하면 10년간의 전쟁동안 미국이 쏟아 부은 폭탄이 785만톤, 화학무기가 75만 리터, 그리고 하루에 504명의 민간인이 미군에 의해 처참하게 때죽음 당했다. 엄청난 숫자만큼 컸을 참혹함의 무게에 새삼 놀라워하면서, 그 때의 아픔을 몸소 직접 체험한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웨인 원 팅 (Nguyễn Quang Tịnh)-베트남 전쟁 참전

 

1.    당시 전쟁터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전쟁 중이었을 때는 두 가지의 현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한쪽은 부상과 죽음에 대해 걱정과 두려움에 빠져있을 때, 다른 한 쪽은 승리의 소식을 듣고자 갈망했어요.

 

2.     전쟁터에서 직접 나라를 위해 싸우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살아왔던 일생에 관한 생각이 가장 많이 났었어요. 모든 군인들은 얼른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가서 가족들을 보며 자신이 일상적으로 하던 일들과 생활을 하고 싶었지요. 그리고 음식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항상 음식의 공급이 부족해서 배고픔에 시달렸어요. 그리고 배고픔이 극도로 달했을 땐 더 이상 전쟁에서 싸울 힘이 나지 않았어요. 인간으로서, 베트남과 미국 군인들 모두는 이 전쟁이 끝나서 자신의 가족들과 다시 상봉하고 자신의 자녀들과 가족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고 싶어했을 거에요.

 

3.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에서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군들은 어떠한 도움이 되었나요? 그리고 한국군들에 대한 생각은 어떠했나요?

한국군은 그 당시 백호 사단(The White Tiger Division)이 푸옌 주(Phu Yen Province) 송 차우 시(Song Cau District)에 본부를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긴급 의료 단체, 건물 보수/준비군, 베트남 어린이들을 위해 새로운 교육 시설을 짓는 군으로 파견이 되었어요. 그러나 전쟁 도중에, 방어도 함께 도와줬지요. 사실상 백호 부대는 베트남 군들에게 군사적 힘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도움이 되었어요. 베트남에게 한국군은 좋은 친구 그 이상이었습니다.

오늘 날, 한국군의 흔적인 대한 고속도로(Dai Han Highway)는 호치민 시(Ho Chi Minh City)와 볜 호어 시(Bien Hoa City)를 연결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베트남들이 이 고속도로를 보면서 한국군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있어요.

 

4.     전쟁이 끝났을때는 어떠한 느낌이 들었나요? 전쟁이 끝남에 따른 안도감? 혹은 황폐해진 땅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해 미래에 대한 걱정?

전쟁이 끝났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해했는지는 정말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사람들은 음식, 자신들의 삶과 교육에 대한 걱정을 하루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5.     베트남이 전쟁후에 이렇게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요전쟁 후 30년만에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 아닌가요?

남 베트남과 북 베트남이 통일을 했을 때, 베트남 정부는 평화로운 날들을 이루기 경제적 개발을 시작했어요. 그 결과 연간 8%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지요. 그러한 경제성장의 분위기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6.     전쟁에 대해서, 후손에게 남기고 싶으신 말씀이 있나요?

베트남 후손들이 우리가 전쟁에서 흘렸던 피, , 눈물들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학생들이 자라면서 자신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현재의 베트남을 만들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전쟁과 역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국인 후손들은 백호 부대가 베트남의 굶주림, 문맹, 장애인들을 위한 많은 도움을 줬다는 점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시는 하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한국인들에게 말하고 싶네요.

 

cảm ơn, Hàn Quốc (고맙습니다, 한국)

 

 

베트남 독립의 일등공신 호치민(HO CHI MINH)

 

      베트남 호치민 시에 위치한 호치민 박물관. 호치민이 고인이 되고    '호아저씨'라 불리는 베트남의

      나서도 여전히 호치민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베트남인들의 호치민          영웅 호치민<사진제공 : 네이버>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호치민의 서거는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본 사진은 호치민의 서거를 애도하는 평양신문에 실린 기사.

 

 

 

베트남전쟁과 더불어 프랑스로부터 베트남의 독립을 이끈 한 명의 일등공신이 있다. 호아저씨라 불리는 호치민은 지금까지도 많은 베트남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는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혁명가였을 뿐 아니라 인성과 덕목에 대해서도 많은 가르침을 남겼다.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그의 성품은 베트남의 독립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호치민은 홍콩에서 베트남 공산당을 결성해 분열해 있던 혁명세력을 하나의 당으로 합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프랑스의 제국주의에 대한 독립을 주장했다. 또한 고국을 떠나 20년 동안 경찰의 눈을 피하느라 몇 번씩이고 가명을 바꾸는 수고를 했다. 전세계를 돌며 베트남의 상황을 전하며 베트남 전쟁의 심각성을 알렸고, 각 나라에 있는 베트남 학생들에게 고국의 문화와 언어를 전해주었다.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한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베트남 독립을 요구하는 편지를 쓸 정도로 독립에 대한 갈망이 컸던 그는 베트남의 아버지이자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한국이 1950년 6월 25일에 6.25 전쟁으로 남북 분단의 상황을 맞게 됐던 것처럼, 베트남도 외세의 세력에 의해 남 베트남과 북 베트남으로 분열되어 자신들의 형제 자매들에게 총과 칼을 겨누고 이산가족의 아픔을 경험했다. 또한,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점이 한국인들과 유사한 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우리 비슷한 부분이 많은 베트남. 오늘부터 그들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그 아픔을 함께 기억한다면 두 나라 모두 또 다시 전쟁의 역사를 겪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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