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조직기증, 우리 함께해요~~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장기기증, 인체조직 기증률이 상당히 낮다. 특히 인체조직 기증은 우리나라에서 아직은 생소한 문화다. 하지만 화상환자나 다른 외상 환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현재 대부분의 인체 조직은 해외에서 수입해오는데, 한국에서 인체 조직 기증 문화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사회공헌팀 서윤경 팀장을 인터뷰했다.

 

1. KOST는 인체조직기증 지원본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KOST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소개해주세요.

 

기사를 보시는 분들 대부분이 인체조직기증에 대해 생소하실 텐데요.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희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는 2008년 사단법인으로 설립됐고, 국민을 대상으로 인체조직기증을 홍보, 교육하고 있습니다. 인체조직기증이란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기증 희망 서약까지 이끌어내는 업무가 저희의 주요 업무입니다. 이를 통해 건전한 기증 문화를 확산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국민건강증진과 보건제도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관련법 개정이나 기증자와 그 유가족에 대한 예우 방안 마련 등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요. 저는 그 중에서도 기업과 단체의 후원을 통해 인체조직 이식재가 필요한 저소득층 환자를 지원하는 사회공헌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2.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인체조직 기증자가 매우 적다고 알려져 있는데, 인체 조직 기증은 어떻게 하는 것이고, 인체 조직 이식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인체조직은 피부, , 연골, 근막, 양막, 인대 및 심장판막, 혈관, 연골 등을 말합니다.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부분은 피부와 뼈이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기증하신 각막도 포함됩니다. 이런 인체조직은 질병이나 사고를 입어 신체적 장애가 생긴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필수적입니다. 특히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었을 때, 피부를 덮어주지 못하면 패혈증 등으로 사망까지 이릅니다. 이때 기증된 피부를 이식하면 생명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또 골육종(뼈암)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새로운 뼈를 이식받아 장애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이식 받은 조직이 바로 누군가 기증한 것이란 이야깁니다.

 

 

 

 

이러한 인체조직기증은 뇌사 등 살아있을 때 가능한 장기기증과 달리 모두 사후에만 이뤄지며, 신체 건강한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습니다. 기증 희망 서약 후 사망 시 저희에게 연락을 주시면, 유가족 동의 후 기증할 수 있습니다. 1명이 최대 100여명까지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까 말씀 드렸듯이, 인체조직기증에 대해 인식이 낮은 만큼 기증율도 매우 낮습니다. 기증 선진국 같은 경우 인구 백만명 당 스페인이 58, 미국은 133명이 넘는데 우리나라는 지난 2011년 기준 4.7명 정도입니다. 때문에 국내에서 필요한 인체조직 이식재 중 무려 76%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내 기증자가 늘어나면 수입 의존율이 줄고 이식재 가격 부담도 낮아지며, 궁극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보건 환경이 개선될 수 있습니다.

인체조직기증에 관심이 있다면 생전에 서약을 통해 평소의 의사를 밝혀두는 것이 중요한데, 본부의 홈페이지(www.kost.or.kr)에서 직접 희망 서약을 하거나 상담 전화 1544-0606으로 서약서를 신청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3. KOST에서 일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이나 장면이 있으시면 소개해주세요.

 

 

저희 본부가 지난 가을부터 12월까지 지원했던 저소득층 화상 환자가 있습니다. 열악한 작업 현장에서 전신 99% 3도 화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했는데, 사연을 들어보니 결혼한 지 이제 막 3개월이 넘은 새 신랑이었습니다. 본부에서는 이 사연을 듣고 환자돕기 공헌사업인 ‘천사의 선물’ 수혜자로 선정하고 2600만원 상당의 피부 이식재를 급히 지원했는데, 환자와 가족에게 지원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저도 병원 현장으로 달려갔었습니다.

지원 환자를 직접 대면한 적은 그 때가 처음이었는데,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납니다. 온몸이 붕대에 감겨있어 의식도 없을 줄 알았던 환자가 제 눈을 보고 설명을 알아들었다는 듯 눈을 깜빡였던 순간, 저는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당신을 살리고 싶다’, ‘고맙다’라는, 눈으로 나눈 대화였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본부와 공헌사업에 대한 설명이 아무런 필요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환자는 슬프게도 지난 12월 중순 결국 먼 길을 떠났지만, 바람 앞에 흔들리는 등불과도 같은 생명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었습니다.

 

 

 

4. 청소년이 KOST를 돕거나, 인체조직 기증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이 기사를 접하고 인체조직기증에 공감한다면, 희망 서약을 통해 잠재적 기증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체조직기증은 법적으로 만 20세가 넘어야 기증 희망 서약을 할 수 있지만 부모 등 법적 대리인의 동의가 있다면 성년 이전에도 가능합니다. 서약 후 발급되는 등록카드를 통해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기증 의향을 밝혀주시면 됩니다. 인체조직기증은 유가족의 동의 없이 기증이 불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시신 훼손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 기증을 포기하는 가족들이 매우 많습니다. 때문에 가족과의 진지한 논의와 설득 과정은 서약 이후 누구나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5. 마지막으로 청소년(,고등학생, 대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생명나눔은 생명윤리를 비롯해 공동체 의식(인류애) 등과 밀접하게 관련된 테마입니다. 이 기사를 접하는 많은 학생들이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인체조직기증’에 대해 널리 알려주시는 것도 길게 보면 고통 받는 환자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도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에서는 매년 대학생,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홍보 서포터즈 ‘해피터즈’를 운영 중입니다. 각자 자신 있는 분야에서 인체조직기증을 자발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고, 본부의 다양한 캠페인을 서포트 해주기도 합니다. 해피터즈들에게는 자원봉사확인서도 발급이 되니, 생명나눔에 공감하고 힘을 보태고자 하는 학생들은 해피터즈에 응모해주시기 바랍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산타원정대

 

 

12월 25일은 전 세계 사람들이 손 꼽아 기다리는 크리스마스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크리스마스는 특별히 더 따뜻했던 크리스마스였다. 소외되어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없는 어린이들을 위해 직접 산타가 찾아가 방문하고 선물도 주는 산타원정대가 있었기때문이다. 이러한 산타 원정대는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이 주관이 되어 진행하며 올해로 6회째가 되었다. 소외된 어린이들의 작은 소망이지만 소중하기에 소원을 들어주는 초록 우산 어린이 재단의  홍보팀 정수진씨를 인터뷰 했다.

 

 

1.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에 대해 소개해주세요.(인터뷰에 응해주신 분 소개도 해주세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팀 정수진입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시시각각 일어나는 따뜻한 나눔 현장을 미디어 매체에 실어 나르는 언론홍보담당으로 활동 중입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국내외 어린이들을 돕는 아동복지전문기관입니다. ‘초록우산’에는 아이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사랑을 담아 펼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재단은 1948년 한국전쟁 직후 부모 잃은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하여 64년 동안 오로지 전 세계 어린이들의 행복과 안전한 삶을 위해 일해 왔습니다. 빈곤가정 어린이 1:1 결연활동을 국내 최초로 실시한 재단은 50만 국민 서명으로 이룬 아동 성범죄자 공소시효 캠페인 <나영이의 부탁>, 가난하지만 꿈은 부자인 아이들에게 연간 800만원의 재능양성비를 지원하는 인재양성서비스, 국제어린이재단연맹(ChildFund Alliance)을 통한 전 세계 58개국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언제나 아이들의 행복을 응원합니다.

 

 

2. 이번에 산타원정대 행사를 진행하신 것으로 압니다. 산타원정대를 만들게 된 계기와 산타원정대가 하신 일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반 가정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나 어린이날이 일 년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라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는 여느 때보다 쓸쓸하게 느껴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산타원정대는 이러한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갑니다. 후원자․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저소득가정 집집마다 찾아가 크리스마스 깜짝 선물을 마련해주기 위해 기획된 산타원정대. 행사는 적게는 몇 십에서 많게는 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모여 진행됩니다. 산타의 유형도 참 다양합니다. 발대식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산타’, 선물 준비부터 아이들 가정에 선물을 배달하는 ‘선물산타’, 산타원정대 발대식에 참여한 아이들과 즐겁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는 ‘놀이산타’가 모두 한 마음으로 어린이들의 소원을 위해 활동합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는 전국 22개 지역본부가 있으며 산타원정대는 매년 겨울마다 각 지역본부 별로 실시합니다.(※사정에 따라 실시하지 않는 지역도 있음) 2012년에는 대구, 전북 등지에서 눈에 띄는 활동이 전개됐고 전북에서는 전북미스코리아들도 직접 산타로 변신하여 행사의 뜻 깊은 취지에 동참했습니다.

 

 

3. 청소년이 어려움에 처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금통 동전 모으기부터 소액후원까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청소년들도 용돈을 아껴 어려운 아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나눔이 습관이 되면 후원금은 추후에라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적은 돈이라도 꾸준히 나눔을 실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단의 이홍렬(방송인) 홍보대사는 “나눠야지, 나눠야지, 생각만 하면 평생 나눌 수 없게 된다. 지금 당장 월 1만원부터라도 후원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꼭 현금 후원이 아니더라도 자원봉사활동을 실시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는 전국 약 60여 개의 지역본부, 복지관 등에서 상시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기관 청소와 같은 단순한 자원봉사부터 중증장애영유아들을 돌보거나 어린이들의 권익을 지키고 모금활동에 나서는 가두캠페인까지도 직접 참여해볼 수 있어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자원봉사자들은 ‘반디(VANDI)’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반디 홈페이지(vandi.childfund.or.kr)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4. 마지막으로 청소년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지난해 12월, 기초생활수급가정에서 어렵게 생활하던 한 여고생이 서울대학교 인문학부에 합격했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부터 2004년부터 지원받던 이 여고생의 부모님은 뇌성마비 1급 장애를 가진 장애우입니다. 만약 누구도 이 아이의 재능을 눈치 채지 못했거나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밀지 않았더라면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한 아이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연말에 거리의 자선냄비를 무심코 지나다가, 혹은 식당 카운터에 비치된 저금통을 보면 동전 몇 개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이 드는 여러분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2013년 새해 다짐에 ‘착한 일 한 걸음’ 보태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어린이를 돕는 일, 어린이재단이 합니다!”

국내 최초 불우아동 1:1 결연사업, 50만 국민 서명으로 이루어낸 아동성범죄자 공소시효 폐지, 가난하지만 꿈은 부자인 아이들을 위한 인재양성 등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만들어온 모든 것이 19만 후원자님 덕분입니다. 아동실종․유괴예방사업, 아동학대 및 학교폭력 예방 교육 등 어린이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 뛰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세계 58개국 어린이들을 돕는 국제어린이재단연맹과 함께 일합니다.

후원문의(희망나눔센터) 1588-1940 초록우산의 활동 자세히 보www.childfund.or.kr

 

 

 

 

 

세계난민의 날 6 20, 그리고 난민인권센터

 

 

6월에는 특별한 날이 있다. 바로 6 20일 세계 난민의 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조금은 생소한 난민의 날은 2001년부터 국제연합(UN)이 유엔총회특별 결의안을 통해 정해진 날이다. 이 날의 시초는 아프리카 난민의 날인데, 난민에 대한 세계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국제사회에서 세계 난민의 날로 확장하여 기념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난민신청자는 4000여 명을 넘어섰으며 그 중에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아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은 290명 정도 이다. 또한 중 대부분은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출신의 난민 지위 인정자이고 콩고 민주공화국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다문화 시대, 난민은 숫자는 적지만 한국 사회의 일원임에 분명하다. 난민의 날을 맞아 한국에 있는 난민인권센터 김성인 사무국장과 인터뷰했다.

 

 

 

1. 난민인권센터를 소개해주세요.

 

난민인권센터(NANCEN, 난센)은 억압과 박해의 벽을 넘어 한국으로 찾아 온 난민들에게 법적, 물적 지원을 하는 NGO(비정부기구)입니다. 난민이 한국에 들어오면 법원에 난민 신청을 하게 되는데 신청 과정에서 필요한 법적 지원을 가장 먼저 합니다. 그리고 3년 정도 걸리는 법원의 난민 신청 과정에서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난민들을 위해 긴급 구호활동도 하구요. 직접 난민을 돕는 것 외에 일반 시민들의 난민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도 합니다. 시민들 중에는 '한국 사회에 부담을 주는 존재'라는 식으로 난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분이 많은데 실제로는 자국에서 인재였던 사람들이 많아요. 한 예로 자국에서 선생님이었던 분도 계시구요. 그래서 난민인권센터에서는 이러한 분들이 각자 능력을 발휘해서 취업하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한글 교육도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2.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는 난민이 익숙한 개념은 아닙니다. 정확한 난민의 개념은 무엇이고 우리나라에 있는 난민의 수와 난민 실정은 어떻습니까?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자국에서 차별과 박해를 받아 외국으로 탈출한 사람을 말합니다. 평범한 국가의 국민들은 국가를 통해 보호를 받는데 오히려 자국에서 박해를 받아 국가를 포기하고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난민에게 있어 우리나라 실정은 별로 좋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난민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난민 신청을 하면 일을 할 수 없고, 사회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으며 우리 정부가 난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보호를 해주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 일부 선진국은 난민 신청을 하는 동시에 자국민들과 똑같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나라, 그리고 UN 사무총장 반기문의 나라라고 해서 우리나라에 부푼 꿈과 희망을 안고 오지만 막상 와서는 차가운 현실에 부딪혀 희망을 잃는 난민들이 많아요.

 

 

3. 난민인권센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난민인권센터에서 일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무래도 난민 신청을 한 분들이 난민으로서 지위가 인정받는 때인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이 가장 기쁜 순간이기도 하고요. 저는 난민으로서 지위가 인정받는 것은 아기가 태어나는 것과 같다고 느껴요. 인간에게는 욕구의 단계가 있는데 가장 일차적인 욕구가 생존의 욕구에요. 난민들은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생존하는 것이 어려워요. 난민으로서 지위를 인정받는다는 것 자체가 생존의 욕구가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꿈을 실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 사회로 들어오지만 바로 다음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진짜 문제에 부닥치게 됩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한국 사회에서 난민들이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 역할을 하는 것이에요.

 

 

4. 2012 5월까지 난민신청자 통계를 보면 신청자는 590명에 달하는데 비해 실제로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30여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난민을 많이 받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법무부, 정보공개청구) 출처: 난센

 

한국 사회의 제도적인 문제로서는 난민인정을 많이 해주게 되면, 그만큼 다른 난민들이 몰려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국가에 더욱 부담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자국민들도 보호를 하지 못하는데 난민들까지 책임져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을 것이기도 하구요. 또한 요즘 외국인 혐오증, '제노포비아'와의 연계도 있어요. 사회 문화적으로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이방인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말로는 다문화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마음속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요. 따라서 제도적인 문제와 사회, 문화적인 문제가 함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청소년들이 난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가장 큰 도움은 후원을 하는 것이에요. 후원하는 돈은 난민의 자녀들에게 분유 지원을 하거나 병원에 가는 등 중요한 일에 쓰입니다. 꼭 난민인권센터가 아니더라도 민주사회의 일원이라면 자신이 각자 관심있는 분야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우리는 지금 말로는 다문화사회라고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경험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외국인들에 대해 개방적이고 먼저 다가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친구처럼 자주 만나다 보면 실질적으로 다가가는 연습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다양한 가치관을 받아들이기 위한 독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정말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민주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단체를 후원하는 것입니다.

 

6. 난민인권센터에서는 난민을 직접 도와주는 것 외에도 시민교육이나 캠페인을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번 6 20일 난민의 날에도 이러한 캠페인이 있나요?

 

난민의 날을 맞아 난민인권센터에서는 6 19일에 포럼을 엽니다. 이번 포럼은 난민들이 직접 나서서 어떤 것을 바라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같은 인간으로서 바라는 내용을 중점으로 진행됩니다. 오후 2시부터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립니다.

 

 

 

난민인권센터: http://www.nancen.org/

 

우리나라의 난민관련 단체는 피난처, 월드비전, 세이브더 칠드런 등 여러 개가 있지만 한국을 찾아온 난민을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단체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난민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는다면 난민을 돕는 손길도 언젠가는 늘어나지 않을까. 

 

 

 

 

 

 

 

 

 

폴란드의 달, mizy에서 만나본 폴란드!

 

 

 

 

지난 5월 19일 토요일, 미지센터에서는 다문화 교육의 일환으로 폴란드 대사관과 함께하는 '폴란드의 달' 첫 번째 행사가 열렸다.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과 대학생 연령대까지, 폴란드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는 주한 폴란드 대사의 강연, 폴란드 학생들과 함께하는 티 브레이크, 그리고 한국 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학과의 마주르카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행사 시작 시간인 오후 2시가 되기 전, 미리 미지센터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행사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폴란드에 관한 전시물을 둘러보았다 폴란드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허용선 작가의 사진, 폴란드 전통의상과 공예품, 도서, 폴란드의 소금광산과 그리피노 나무숲을 배경으로 한 포토존 등이 마련되어 있어 폴란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크쉬슈토프 마이카(Dr. Krzysztof Ignacy Majka주한 폴란드 대사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그의 강연은 한국과 폴란드의 관계,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에 비추어 본 국가 간 관계 등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이번 강연을 통해 강조한 것은 각 나라들 간의 협력의 중요성이었다

 

"외교는 5000년 전 전쟁에서 평화 협상의 목적으로 도시에서 도시로 메신저가 이동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이카 대사는 외교에 있어서 ‘negotiation’(협상, 협의)의 중요성과 이러한 협력을 토대로 한 외교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진 외교의 기본적인 기능으로 "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의 기능', 자국을 보호하는 '보호의 기능', 정부 간 협력하는 '협력의 기능', 경제나 광고 문화 그리고 과학적 측면을 모니터하는 '모니터의 기능', 국가 간 관계를 촉진하는 '발전의 기능', 그리고 비자나 여행허가를 관리하는 '이슈의 기능' " 등을 설명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이어진 내용은 폴란드 전반에 대한 것이었다. 마이카 대사는 폴란드의 위치로부터 시작해서 국기와 헌법, 사회제도, 음식, 인물, 대중문화까지 다양한 내용을 다루었다. 그에 따르면 폴란드는 유럽대륙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도 또한  바르샤바로 폴란드의 중앙에 있다. 폴란드의 국기는 흰색과 빨간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두 색깔은 1831년에 있었던 11월 혁명으로 폴란드를 상징하는 색깔이 되면서 후에 독립을 이루면서 공식적으로 국가의 색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국가 공식 엠블럼도 있는데 흰색 바탕의 흰 독수리가 왕관을 쓰고 있으며 뒷 배경 역시 빨간색이라고 한다.  

 

 

 

 

폴란드 대사의 강연이 끝나고 다음으로 이어진 순서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학과 동아리인 '마주르카'의 폴란드 전통춤 공연이었다. 폴란드 출신의 음악가인 쇼팽에 의해 더 잘 알려진 전통 음악과 춤의 이름이기도 한 '마주르카'는 폴란드가 19세기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았을 당시 민족 정체성을 잃지 않고 독립의 의지를 다지게 해주었던 폴란드 고유의 문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폴란드어학과 '마주르카' 학생들이 이날 보여준 춤은 빠르고 경쾌한 것이 특징이며 아름다운 전통의상때문에 더욱 눈길을 끌었다.

 

 

 

 

참가자들은 이날 마주르카 공연이 끝난 후 폴란드 과자를 먹으며 폴란드 학생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폴란드 대사에게 평소 궁금했던 점을 묻기도 했다. 또한 '마주르카' 공연팀에게 폴란드 전통춤을 직접 배워보기도 했다.

 

지리적으로는 우리와 많이 떨어져있지만 신기하게도 우리 민족과 비슷한 점들을 많이 갖고 있는 폴란드. 이번 폴란드 행사를 통해 폴란드에 대해 새로운 점들을 발견하고 서로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대형마트 SSM 규제, 청소년은?

 

 

대형 마트와 SSM 규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 4월 8일 일요일 SSM 강제 휴무가 실시되었고, 22일부터는 대형 마트의 강제 휴무가 실시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둘째, 넷째 일요일은 개정된 유통법에 따라 휴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규제를 찬성해야 한다는 쪽과 규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쪽의 의견대립이 팽팽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란에 대해 청소년들의 시각은 어떨까.

 

 

대형 마트와 SSM의 차이점은?

대형 마트는 생산자로부터 물품을 대량으로 구매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시중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유통업체를 말하며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가 대표적이다.

 

SSM(super supermarket)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을 뜻하며 대표적으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GS 슈퍼마켓 등이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기 때문에 유통구조 상 좀 더 낮은 가격과 세련되고 쾌적한 환경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불편한 주차시설, 낮은 접근성 등을 이유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재래시장은 이러한 대기업형 슈퍼마켓의 출현으로 생존 위협을 받고 있다.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동네에 문구점이 한 곳 밖에 없고, 그 한 곳마저 일요일에는 열지 않는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사는 고등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어 보았다. 먼저, 동네 문구점이 문을 열지 않는 일요일에는 어디서 준비물을 사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집 앞에 있는 이마트를 이용하거나 두 정거장 떨어진 거리에 있는 대형 문구점을 찾는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대형 마트의 강제휴무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90% 이상의 학생들이 대형 마트의 강제휴무로 인해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강제휴무가 실시되는 일요일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분당의 H 고등학교 이한결(17)학생은 "대형 마트의 문구점 코너를 주로 이용하는데 대형 마트가 문을 닫는 다면, 문을 닫기 전날인 토요일을 이용해 준비물을 준비하거나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일요일에는 두 정거장 떨어진 교보문고의 핫트랙스를 이용하겠다"라고 답했고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다. 결과적으로 청소년들은 아직 종류가 다양하고 쾌적한 환경인 대형 마트의 문구 코너 혹은 대형 문구점 이용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적어도 당분간은 원래의 SSM 규제 목적인 전통 시장이나 골목 문구점 이용은 기대하는 효과보다는 저조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에는 어떠한지 살펴보자.

 

 

 프랑스: 프랑스의 경우 대기업이 운영하는 브랜드 슈퍼가 대부분이었던 1970년대, 대기업끼리 담합을 하여 한 달 사이에 생필품 가격이 40% 이상 폭등하는 현상이 벌어져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 후 라파앵 법에 의해 대형 유통업체 신규 점포 출점 시 지역 상업시설설치위원회 허가 의무화가 실시되었으며, 현재 파리에는 대형마트가 없고 중소상가와 재래시장을 발전시켜 지역을 대표하는 하나의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다.

 

독일: 독일의 경우, 도시 건설법에 따르면 일정한 연면적 이상의 시설은 개설 허가가 의무화되어있으며 마트가 들어서고 난 후의 교통, 환경, 주거, 상권의 영향을 예상해서 주민들의 동의가 있어야 개설이 가능하다. 또한 대형 마트가 들어섬으로 인해 지역 소규모 상가 매출이 10% 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으면 10% 가이드라인으로 인해 입점을 불허하고 있다. 또한 입점한 대형 마트에 대해서도 주중 오전6시부터 오후 8시, 일요일 휴점으로 대형 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이탈리아: 인구 1만 명 이하 도시는 1500 미터 제곱, 1만 명 이상은 2500 미터 제곱 이하로 소매시설의 규모를 제한하고 있다. 또한 주중 밤 10시까지,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점하는 것으로 영업시간을 규제하고 있다.

 

일본: 대규모 점포 설치 시 주민들에게 설명회를 개최하고, 교통, 소음, 주차, 사전 영향평가 등 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 특히 선진국으로 일컬어지는 다수의 나라들이 대형 마트와 SSM을 부분적으로 규제하고 전통 시장이나 골목 상권을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형 마트와 SSM을 규제하고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지만, 아직까지는 전통시장의 매출 증대로 이어지는 효과는 미미해 보인다. 따라서 이미 쾌적하고 종류도 다양한 대형 마트, SSM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으로 끌어들일지에 대해 더욱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8회 한국여성대회

 

 


3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한 국내 항공사의 여승무원 복장문제로 인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는 회사측과, 편리성과 기내의 안전을 위해 바지를 입게 해달라는 승무원 노조측 의견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이 논란을 두고, 사람들은 항공사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치마만 입도록 강요하는 것은 여성의 성을 상품화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여성들의 인권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예에서 보듯 여성 인권 문제는 '여성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21세기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세계적으로 '여성 인권'을 소리높여 외치는 날인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에서도 여성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지난 10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여성의 날 104주년을 기념해서 열린 28회 한국여성대회에 다녀왔다
 

 

거리퍼레이드 (출처: http://38women.co.kr)

 

오전 11시부터 시작한 시민난장 ‘2012년 약속장터’에서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이 부스를 운영했다. 성폭력, 성 매매 문제가 많이 대두되고 있는 현재 우리의 상황을 반영하듯, 여성의 성 문제에 대한 홍보부스가 눈에 많이 띄었다. 한 성폭력 관련 단체의 부스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송판에 성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의 현실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쓴 후, 그 송판을 격파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행사의 한 참가자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송파에 쓰고 격파를 했다.

다른 부스에서는 한국에 이주해온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한 베트남과 몽골의 문화 체험 부스와 미혼모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개선을 위한 캠페인 등이 진행되었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시민난장

오전1, 본격적인 세계 여성의 날 기념식이 시작되었다. 제일 처음 막을 연 무대는 우리가 만들어요라는 율동으로 모두가 함께 하는 무대였다. 2천 개의 좌석에 있던 시민들도 함께 음악에 맞추어 율동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목처럼, 여성의 인권을 위해 우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는 무대였다

다음으로 이어진 대회사, 축사는 여성의 인권과 평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정치계와 시민단체의 약속으로 진행되었다. 그 다음 순서는 2012년 '올해의 여성운동상' 시상으로,  전국민간서비스산업연맹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가 수상했다. 재능교육지부는 학습지 교사의 노동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2007 12월부터 농성을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다고 한다. 여성의 인권을 위한 노력에, 많은 박수 갈채가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여성선언과 퍼포먼스 ‘2012 약속해로 시민들은 기념식이 마무리됐다. 
 


기념식을 마무리 한 후, 모든 참가자들은 거리퍼레이드를 진행했다. 서울광장을 시작으로 대한문을 지나 서울역광장까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거리 퍼레이드를 즐기며 여성의 날을 즐기고, 또 여성의 인권을 외쳤다.

 

2012 약속해 (출처: http://38women.co.kr)


‘2012 약속해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된 이번 한국여성대회는 여성의 인권을 위한 즐거운 참여의 행사였다. 많은 체험거리와 즐거운 퍼포먼스로 이루어진 기념식은 남녀노소 누구나 여성의 날을 즐기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렇게 세계 여성의 날 행사가 매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아직 사회 곳곳에 여성에 대한 차별과 여성의 인권침해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를 봐도, 과거보다 여성의 인권이 많이 신장되었지만 아직 차별 없는 세상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성폭력, 성 매매, 미혼모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 기업에서의 여성 차별, 여성 연예인의 성 상품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계 여성의 날

 

세계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루트거스 광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거리고 나섰던 것을 기념하며 시작되었다.

그 당시 섬유 공자의 노동자였던 여성들은 생존을 의미하는 빵과, 참정권을 의미하는 빨간 장미를 들고 그들의 권리를 주장했고, 정당에 있던 소수의 여성들이 1909 2, 마지막 일요일에 집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그 이후 1910년 코펜하겐에서 국제여성의 날을 기념하자는 결의가 채택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은 1920 3 8, 최초의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진행했으나 일제강점기와 탄압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다시 1985년부터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대규모 여성 문화 행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현재 중국과 러시아, 캄보디아와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의 경우 여성의 날은 국가가 지정한 공식 휴일이며, 유급 휴가를 보장받는다.







최근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사형선고 문제가 화제다. 반기문총장을 비롯한 각종 인권단체들은 사형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집트 검찰과 다른 민간인들은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형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찬반 논란이 여전히 뜨거운 문제인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줄기차게 활동해온 단체가 있다.

사형문제나 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왔을 이름, 앰네스티(Amnesty)앰네스티는 사형집행을 멈추고, 사형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제적인 단체 중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앰네스티의 한국지부 역시 사형제 폐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김희진 전 사무국장은 30세라는 어린 나이로 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을 맡아 많은 어려움에 놓여있던 앰네스티 한국지부를 일으켜 세우며 활발한 활동을 해 국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또한,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 F2F) 라는 캠페인을 통해 거리에서 시민들을 직접 만나는 활동을 함으로써 여러 국가의 인권상황과 앰네스티를 한국에 소개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서면 인터뷰를 통해 김희진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지난 8년 동안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사무국장을 맡아 일해온 김희진입니다. 30대 후반의 여성이고 최근 엄마가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 소수자로 살았습니다. 그때 차별에 대한 강한 경험을 하게 되었고 저보다 더 않 좋은 상황에 있는 친구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중3 때부터 차별받는 사람들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자원활동은 다 했던 것 같아요. 대한 때 한 학기에 최고 여섯 군데에서 자원활동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캐나다에서 경영학과 사회복지학으로 두 개의 학교에서 대학원을 마쳤습니다. 졸업 후 난민 관련 일을 2년 정도 했고 우연한 기회에 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채용공지를 보고 지원하여 사무국장이 되었습니다.

(사진제공:미디어오늘)


2. 앰네스티는 어떤 단체인가요.


국제 앰네스티는 예전에는 국제사면위원회라고 불렸습니다. 수감자들의 '사면'을 요구하는 것 외의 다른 활동들을 하게 되면서 더 이상 '사면위원회'가 어울리지 않게 되었고 고유명사로 '앰네스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160개국에서 280만 명이 넘는 회원들과 지지자들이 있는, 규모로는 최대의 인권단체입니다. 지난해에 50주년을 맞이하였고 77년에는 노벨평화상, 78년에는 유엔 인권상을 받았습니다. 앰네스티의 조사와 보고서는 전 세계적으로 신뢰를 받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진행되는 캠페인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열려있습니다. 정치적 시민적 권리에 대한 활동으로 시작하였지만, 현재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에 대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3. 인권이란 무엇이고, 우리 주위에 인권이 침해되고 있는 사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인권은 흔히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지게 되는 권리'라고 얘기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주관적일 수 있고 이런 이유로 '인권'이 너무 쉽게 아무 곳에나 사용되는 것을 최근 목격하게 됩니다. 지난 8년간 '인권이 무엇인가'로 고민했지만, 계속 발전하는 개념인 인권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단 인권을 그 시대가 인식하는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라고 생각했을 때, 1948년 전 세계가 합의한 세계 인권선언이 말하는 권리가 인권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한국이 아무리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그 누구도 인권이 잘 보장된 나라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슈별로 본다면 다른 국가들보다 한국이 더 나은 상황에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인권'을 이야기하면 정치적인 시각을 갖다 대며 '좌파'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사회는 인권이 기본가치로 자리잡지 못한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인권이 보편적인 것이 아닌 누구에게는 적용되고 누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장애인과 성적소수자, 이주노동자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소수집단 외에도 학생, 노동자, 여성 등 그 수에 있어 소수라고 할 수 없는 집단들까지도 다양한 인권침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4. 앰네스티에서 일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촛불집회'로 떠들썩했던 2008년 여름입니다. 당시 국제 앰네스티에서 조사관이 파견되어 저와 함께 모니터하러 곳곳을 다녔습니다. 저와 조사관이 둘 다 여성이라고 반말을 하던 경찰 간부, 앰네스티를 고소하겠다고 큰소리치다가 망신만 당했던 경찰청장, 사무실 앞에 몰려와 "Amnesty Go Home"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데모하던 어르신들. 힘들었지만, 조사관에게 눈물에 글썽이며 "Thank you"를 속삭이던 전경을 생각하면 앰네스티에 작은 기대와 희망을 가졌던 시민들이 떠올라 아직도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게 됩니다.


5. 청소년들이 인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인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일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 열린 마음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우선적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주변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일 것입니다. 한국사회에 많은 인권단체들이 있습니다. 그 단체들에서 하는 활동들에 함께 참여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자신이 더욱 관심이 가는 대상이나 이슈들이 있다면 꾸준히 작은 활동부터 시작하십시오. 언젠가 활동가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실 겁니다.



 

1977년 노벨 평화상 수상 (앰네스티 제공)

국제 앰네스티 

1960년, 자유를 위해 건배한 포르투갈의 두 명의 대학생이 체포되었고 영국의 변호사가 이 사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변호사는 "잊혀진 수인들"이라는 제목으로 기고문을 썼고,  이 기고문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변호사가 바로 영국의 피터 베넨슨이고 첫 앰네스티 공식 대표가 된다. 세계로 퍼져나간 이 기고문을 통해 여러사람들이 뜻을 모아 국제앰네스티를 설립했다.
여러 나라의 양심수를 지원하고, 인권관련 논문과 보고서를 쓰고 탄원 캠페인을 벌이며 1974년, 1977년 노벨평화상, 1978년 유엔인권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 160여 국가, 220만명의 회원이 앰네스티에서 활동하고있다. 60여개의 국가에 지부를 가지고 있는데, 한국지부는 3명의 대의원을 2년마다 한번씩 총회에 파견하고, 영국 런던의 국제사무국에서 전반적인 운영과 조사가 진행된다.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1972년에 한국지부로 출범하였으며 1973년 고문 반대 캠페인을 시작으로 현재 무기거래 통제, 사형제폐지, 난민과 이주노동자의 인권, 여성폭력추방, 경제, 사회문화권, 양심수와 개인사례, 중국과 중동 북아프리카 인권에 관한 조사를 하고 그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려 인권 침해를 중단하도록 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NGO이다. 2007년에는 '대한민국 실질적 사형폐지국가선포식'을 하기도 했으며 2004년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을 서울로 이전하였고 현재 한국지부에는 20개의 자발적인 그룹이 활동 중이며 이들은 각 지역에서 인권을 위한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청소년, 우리도 참여할 수 있어요!


국제 앰네스티는 처음 활동을 탄원 편지쓰기로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탄원 편지쓰기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면서도 영향력이 큰 활동이다. 
http://www.amnesty.or.kr  을 방문하면 온라인으로 쉽게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탄원편지를 쓸 수 있고 탄원편지를 통해 사건이 해결된 사례도 직접 볼 수 있다. 우리도 인권활동가가 될 수 있다 !   




 



 


1,004번째의 여성 인권을 향한 외침! 2011년 1월 11일, 일본 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제 1,004회 위안부 수요시위가 열렸다. 1992년 1월부터 시작한 수요시위는 매주 수요일 12시에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며 얼마 전 1,000회를 맞았다. 수요시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 규명과 문제 해결을 위해 열리는 것으로 최근 소녀상 평화비도 제막 되었다. 소녀상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끌려갈 당시 할머니들의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추운 날씨에도 시민들이 둘러준 담요와 목도리를 하고 꿋꿋이 평화로를 지키고 있었다.

수요시위에 참가한 시민들과 위안부 할머니


12시 정오,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어느새 대열을 갖추고, 각자 자신들이 준비한 플래카드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방학 중이라서 그런지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학생들이었다. 이번 수요시위에는 길원옥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께서 함께해주셨다. 수요시위는 "할머니에게 명예와 인권을!"이라는 구호와 함께 어김없이 '바위처럼'이라는 노래로 시작되었다. 참가자들은 모두 하나의 마음으로 일본대사관을 바라보고 서서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이어서 윤미향 대표가 경과보고를 했다. 우리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 할머님들의 인권과 명예를 위해 퍼져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수요시위에 함께 참가해주신 김복동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


다음 순서는 자유발언 시간이었다. 오늘의 자유발언 시간에서는 희망 꿈 공주학부모회 충효예교실 학생들이 할머님께 직접 쓴 편지를 읽어드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어린아이의 편지임에도 사람들 모두가 귀 기울였고 진심으로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연대의 노래인 상록수를 부르고 1004번째 성명서를 낭독하며 1시간여에 걸친 수요시위가 끝이 났다. 수요시위는 끝이 났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는 수요시위의 여운을 잊지 못한 듯, 소녀상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위안부 할머니께 손수 인사를 드리기도 했다.

희망꿈공주학부모회 충효예교실에서 한 학생이 위안부 할머님께 직접 써온 편지를 읽고 있는 모습.


1,004회 수요시위에 참가한 이윤정 양(대한민국 청소년 총 연합회 소속)은 '한국사 시간에 영상으로 위안부에 대해 배웠고, 이 문제에 대해 깊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다가 참가하게 되었다'고 말했으며,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수요시위를 하는데 건너편 일본 대사관은 창 밖으로 한 번도 내다보지 않는다'며 일본 정부를 향해 원망 섞인 시각을 드러냈다.

경찰이 배치되어 있는 건너편 일본 대사관의 모습


최근에 제막된 소녀상 평화비의 모습. 목도리와 담요를 두르고 있다.




소녀상 평화비에는 한가지 숨겨져 있는 슬픈 의미가 있다. 동상의 모습은 10대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조각되어 있지만, 돌로 깔린 소녀상의 그림자는 쪽 찐 머리와 함께 등이 굽은 할머니의 모습이다.
일본 정부는 소녀상 평화비가 일본 대사관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소녀상 평화비에는 그 어디에도 일본과 관련된 글이나 일본을 뜻하는 상징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 스스로 위안부에 대한 문제를 자각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윤미향(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상임대표)

20년간 수요시위를 진행해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상임대표를 인터뷰했다.

1. 청소년들에게 수요집회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를 한다면?
1992년 1월 8일 시작된 이래 매주 수요일 12시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합니다. 이곳 평화로 일본 대사관 앞에서, 물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는 그날까지 계속하고요. 처음에는 피해자들과 소수의 여성이 시작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학생들이, 외국에서 관광하러 오신 분들이, 평화운동, 인권운동 하시는 분들이, 정치가들이 적극적으로 연대를 하고 있고요. 그래서 지난 2011년 11월 14일 날 1,000차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벌써 1,004차를 하고 있는 거고요. 수요시위는 7가지를 요구하고 있어요. 첫 번째는 자료를 공개하고 진상을 규명하라. 두 번째는 범죄임을 인정하라. 세 번째는 공식 사죄하라. 네 번째는 법적 배상 하라. 다섯번째가 역사 교과서에 기록하고 올바르게 기록하라. 여섯 번 째, 사료관과 추모비를 건립하고 재발방지 조치를 취하라. 일곱 번째가 이 범죄의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에요. 그런데 아직도 계속 일곱 가지 요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2. 수요시위와 더불어 청소년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하여 할  수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 일을까요?
열심히 친구들에게 위안부를 잊지 않도록 알리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똑같이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게 되거든요. 따라서 역사를 기억하도록 친구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알려야겠죠. 이것에 대해 책도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또 요즘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인터넷이나 매체들을 통해서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활동들. 한국 정부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요구하는 것들을 인터넷을 통해서 열심히 활동하는 것이 있을 수 있어요. 다른 하나는 요즘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이 많잖아요. 축제나 다른 활동도 좋지만, 그런 것보다 더 깊은 역사의 가치라던가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역사에 대해 전시하고 다큐멘터리도 많으니까. 또 이렇게 직접 활동하시는 분들 초청해서 강의를 듣는 것. 이렇게 해서 계속 이것을 퍼트리는 것, 이것을 일본 정부가 가장 무서워할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알게 되는 것. 왜냐하면, 그만큼 일본정부에게는 이것이 부끄러운 일이니까.

3. 청소년들에게 간단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지 말고 내가 포기하고 싶을 때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에게 평화를,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고 있는 할머니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힘을 가져라. 그리고 나의 개인의 이익이라던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이외에 내가 속한 사회의 이웃들의 아픔이라던 가의 문제, 고통에 함께 관심을 두고 참여하고 그 문제 해결에 힘을 쓰는 것. 이것이 바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이요. 내가 아무리 잘나도 우리 사회가 엉망이고 불의하고 모순적이면 내가 행복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 그런 노력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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