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책 읽는 중"

 

10 26, 옛 서울시청사가 서울도서관의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개관 다음 날인 27일에는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계속되었다.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도서관에서 진행된 ‘2012 서울 북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이 날 역시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었다. 27일 저자와의 만남 행사에는 덕성여자대학교의 이원복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하고자 먼 지방에서부터 찾아온 학교 선생님들부터 엄마 손을 잡고 온 학생, 어릴 적 먼 나라 이웃나라의 팬이었음을 자처하는 직장인까지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의 자리를 메워 시작 전부터 열기가 뜨거웠다. 출판평론가 김기태 교수와 이원복 교수간의 북 토크형식으로 시작된 본 강연은 이원복 교수의 책에 대한 애정, 만화가로서의 삶, 인문학의 중요성 등을 깨달을 수 있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큰 호응을 얻었다.  

 

서울도서관은 서울시의 행정 중심지였던 옛 청사를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어보자는 취지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20여 만 권의 장서와 5m 높이의 벽면서가, 장애인 자료실, 서울자료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서울시내 320여 개 도서관 자료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통합 도서검색 서비스도 지원한다. 도서관 내부는 1926년 건립 당시 청사의 외벽과 홀, 중앙계단을 그대로 복원하여 서울의 역사적인 상징성 또한 느껴볼 수 있다.

 

 

 

현재 서울 시내에 건립된 도서관만 1000여 개.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동네 주변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생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쁜 일상으로 심신이 지쳤다면? 어릴 적 도서관에서의 추억과 역사의 풍미까지 함께 누릴 수 있는 서울의 대표도서관, 서울도서관을 찾자  

 

저자와의 대화 (김기태 교수 질문, 이원복 교수 답)

 

 

선생님께서는 대학생 시절 건축학을 전공하시고, 유학을 떠나셔선 디자인학부를 졸업하셨습니다.  거기에 복수전공으로 철학과에서 서양미술사까지 배우셨지요. 이렇게 여러 가지 영역을 넘나드시며 살아오셨는데, 이건 이 모든 걸 잘한다는 의미입니까? 아님 다 못한다는 겁니까?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사람이 한 분야만을 부지런히 파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흔히들 ‘T자형 인재를 원한다고 하잖아요. 잡다한 지식을 고루 갖추고, 또 자신의 전문분야는 깊게 탐구하는 사람. 스티브 잡스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닙니까? IT 기술에 인문학적 교양과 소양을 접목, 융합시켜서 큰 혁신을 이루어냈지요. 사실, 그 사람은 이름이 좋아서 성공한 거에요. 잡스(jobs). (job)은 잡인데, 하필 또 복수잖아요. (웃음)

 

그 많고도 많은 길 중 만화를 택하신 계기가 뭡니까?

원래 전 만화를 그리던 사람이에요. 쉽게 말하자면 만화를 그리다가 다른 분야로 외도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1 때부터 줄곧 그림을 그려왔어요.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만화가라는 직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죠. 단순한 아르바이트 정도로만 생각되었을 뿐이지 그 누구도 만화 그리는 일을 평생직업으로 생각하지 못하던 시대였어요.

 

형제 분들께서도 모두 교수이시고, 부모님께서도 상당한 학자적 소양을 갖추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만화가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겠어요.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셨어요. 저희 가족은 7남매였고요. 제가 어릴 적인 1950년대의 대한민국은 가장 못사는 나라 중 끝에서 두 번째였습니다. 지금의 아프리카보다 사정이 좋지 않았었죠. 벌어먹고 사는데 급급했기에 형제들은 동생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신경 쓸 겨를 조차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저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셈이죠. (웃음) 

예전에는 만화를 서점에서 사기 힘들었죠. 만화가게에서나 읽는 게 다였습니다. 그런 만화 계를 양지로 내놓은 것이 이원복 교수님이십니다. 저작권 사용료(인세)를 최초로 받기 시작한 만화가도 교수님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양지로 내놓았다는 건 지금에 와서나 하는 이야기이고요. (웃음) 계몽사라는 출판사가 있는데, 거기 회장으로 계신 분이 제 고등학교 동기 동창입니다. 84년대에 귀국해서 그간 신문에 연재해온 먼 나라 이웃나라를 엮어서 출판하려고 그 친구에게 찾아갔더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원복아, 어떻게 계몽사에서 만화를 내냐?” 나중에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고 나서 언론 인터뷰가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벼룩시장부터 주요 5대 일간지에 이르기까지 묻는 내용은 단 하나였어요. “어떻게 대학 교수가 만화를 그릴 수 있느냐.”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먼 나라 이웃나라가 매스컴을 타면서 교수가 그린 만화라고 알려지니까 엄마들이 반기기 시작했어요. 자녀가 만화를 읽는 것은 싫은데, 너무 재미있어 하니까 안 읽힐 수도 없고. 그래서 찾은 일종의 알리바이가 학습 만화인 거죠. 그렇게 시작된 관심이 25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한 만화가 그 오랜 기간 동안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신기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동 도서전이 볼로니아에서 개최되는데요, 거기에서 상을 받는 것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대단한 영광이라고 합니다. 상을 받는 사람도 대단한데, 교수님께서는 현재 수상자를 정하는 심사위원으로 계십니다. 국내 최초의 볼로니아 아동도서전 일러스트레이터 심사위원으로서 우리나라 만화 수준을 판단한다면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그림이 어떻다기보다도 그 안의 내용, 콘텐츠가 중요한 거죠. 실제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아동도서 시장입니다.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한국에서 개최되는 도서전에 자주 참석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아동도서가 소모품화 되고 있다는 게 아쉬울 뿐이죠. 출산율이 낮아지고, 아기 수가 적어지니까, 우리 애한테는 헌 책을 사줄 수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부모님들이 새 책을 그렇게 많이 사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위 말하는 선진국일 수록 부모님이 자녀에게 직접 책을 사주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기껏해야 생일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게 다이지요. 대신 아이들은 도서관을 이용합니다. 그런 국가들에서는 어린이 도서가 도서관에서 절대적인 요소로 자리잡은 반면 우리나라는 한 가정집이 도서관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대조적이지요.

 

그렇다면 교수님, 왜 책을 읽어야 하나요?

요샌 놀게 넘쳐나죠. 애니팡도 있고, 앵그리버드도 있고. 그런데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도, 책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은 천지차이가 난다는 거죠. 다시 말해, 책을 읽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겁니다. 왜냐, 한번 살펴봅시다. 책은 활자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반면 텔레비전과 같은 시각 매체는 그림으로 되어있죠. 예컨대 우리가 아무것도 읽을 수 없고, 모든 정보와 지식을 오로지 PC, 모바일, 텔레비전에서만 섭취해야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만약 사과를 보았다면,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빨간 사과만을 사과의 전부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파랗거나, 노랗거나, 아주 큰 떠올릴 수 없다는 거죠. 반대로 사과를 문자로서 이해한 사람은 한 단어에 대한 무한대로의 연장이 가능합니다. 책이 아닌 다른 시각매체는 이렇게 상상력과 유연성을 위축시켜 버리기 때문에 오늘날의 융합의 시대에는 책의 중요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덕성여대에서 정년 퇴임하셨는데 여전히 석좌교수로 학교에 나가고 계십니다.

석좌교수를 잘못 생각하면 돌 위에 앉아있는 교수로 생각할 수도 있어요. (웃음) 그건 아니고, 석좌교수는 학교에서 나오는 월급이 없다 뿐이지, 정식 직원으로 기업체에서 지원하는 월급을 받고 다닙니다. 명예교수는 대부분 20년 이상 근무하고 은퇴한 교수로 석좌교수와 달리 학교의 정식 직원은 아니지요. 강의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됩니다. 30년 가까이 강의만 했으면 쉴 때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웃음) 강의를 하지 않아도 월급은 나오니, 좋아도 너무 좋은 거죠. (웃음)

 

교수님께서는 책을 고르는 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정말 애매합니다. 자기 취향이 있잖아요. 요즘은 아무래도 인문학이 강조되고 있죠. 인문학은 지식보다는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는 학문입니다. 어렵지 않아요. 예컨대 철학은나는 왜 사냐.’는 거거든요. ‘나는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산다,’ ‘내 멋에 산다.’ 이것도 다 일종의 철학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어린 친구들은 인문학을 쉽게 설명해놓은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요새는 쉽게 풀이해놓은 고전도 참 많이 있잖아요.

 

교수님, 대학은 꼭 가야 하나요?

꼭 가지 않아도 되죠. 일례로 독일에서는 대학 진학률이 60퍼센트밖에 되지 않습니다. 캐나다에 아들이 유학을 가있는데, 한 번은 현지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대학에 왜 가냐고 물어보니까 대답이 엉뚱하더라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면 임금이 1650인데, 대학을 졸업하면 2250에서 시작한다. 참고 설명을 드리자면, 그 곳의 아이들은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는 게 아닙니다. 보통 8년 정도 걸린다고 해요. 서양에서는 아무리 부잣집이라고 해도 18세가 되면 독립하고 집에서는 돈을 대주지 않기 때문이죠. 1년 공부하고, 휴학해서 돈 벌고, 또 다시 1년 공부하고……. 이런 식 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애초에 그게 싫은 사람은 대학에 가지 않는 게 낫습니다. 대학생들이 휴학하고 쉬는 동안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해나가면 8년이 지난 시점 즈음에서는 임금이 비슷해지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서 대학 진학이 당연시 되는 건 인생의 설계 자체에 거품이 많이 껴있고, 부모의 과잉보호가 너무 심해서입니다. 대학 진학 여부는 순전히 자신의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노래가 음악성 측면에서 독특한 것도 물론 이유가 되겠지만 이번 센세이션은 그리 단순한 이슈가 아닙니다. 강남스타일과 싸이가 큰 화제를 모았던 시점을 살펴보세요. 8월에서 9월말일 겁니다. 그 때 우리나라는 올림픽 5위라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결과입니다. 상위 5개국 가운데 1,2,3위 국가가 모두 일 억 이상의 인구를 지니고, 국토가 제일 큰 나라들이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홈 그라운드인 영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악조건 속에서 1등을 한 셈입니다. 백인 사이에는 남을 칭찬하기 싫어하는 정서가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가 잘 되는 꼴을 못 보지요. 그런데 갤럭시가 아이폰을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올림픽에서 5등을 했고요. 현대 자동차는 이리저리 굴러다녀요. “코리아, 이건 뭐야?” 말은 안 하지만 ‘What is Korea?’라는 잠재의식이 깔리기 시작한 거죠. 계속해서 그런 관심을 부인해오다가 결국 한국이 마음에 든다고 마음 놓고 터뜨린 게 싸이입니다.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만 모르나 본데,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몰라요. , 이번 강남스타일열풍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국력이 터진 겁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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