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차가운 공기가 몸을 감싸며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그리워 지며, 하얗게 뿜게되는 입김으로 겨울을 맞이하는 이때에 삶에 대한 철학을 성인의 말씀을 통해 배우고자 대산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교보인문학석강을 들으러 종종걸음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유교, 그 잊혀진 삶의 기술"

 

경제적인 부만이 성공의 척도로 대접받고 있는 사회 분위기와 점점 더 건조해지고 있는 세상속에서 철학적 가치의 부재와 이기적인 발상에서 시작되는 나만의, 자기만의 행동들이 대한민국의 어두운 한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은 '인간다움'을 연구하고 이를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됩니다.

 

물론, 사회적인 거창한 인문학의 정의을 깨닫기보다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자기 합리화에 이끌려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단순한 이기에 이끌린 참석이였지만 강연이 끝난 후,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였습니다.

 

 

 

 

한형조 교수님께서 "과연 퇴계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라고 물으셨습니다.

유학의 대가이자, 잘못 꿰어진 저고리 조차도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 유학자들이 생각했었던 학문의 천재.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퇴계는, 노래를 즐겨했던 해피한 인생을 즐긴 사람입니다."

 

모두가 생각했던 유학의 대가라는 이야기가 아닌 삶에 대한 시각이 다른, 책을 통해 옛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신수 자연과 더불어 노니는, 삶을 즐겼던 사람이 퇴계였습니다.

 

학문의 깊이보다는 퇴계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어렵다고 생각되는 퇴계선생의 이론들에 대한 강연이 계속되었습니다.

 

 

 

 

유교는 인간이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기술과 자본의 시대가 인간을 더욱 자신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자연으로부터, 삶의 의미로부터 낯설게 만들었습니다.

 

유학은 이 근원적 <소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의미와 목표가 무절제한 충동이나 세속적 관행의 준수 너머에 있다는 가르침은 유교만의 것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의 지혜에서 로마의 소토아, 중세 기독교의 복음, 소유와 탐욕을 반대한 스피노자와 소로, 그리고 슈바이처 등등 열거하자면 수도 없습니다. 유학은 이들 탈근대적 탈세속적 목소리들과 공명하고 서로의 자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퇴계는 이야기 합니다.

 

"오늘 저녁...'음식 맛이 어떠십니까?"

 

"네 마음 속에 '분노'가 있으면, 그리고 공포, 애착, 혹은 '걱정'이 있으면, 마음은 '평정'을 얻지 못한다. 그렇게 불건전한 편견과 정념에 사로잡히면, 도무지 보아도 보일리 없고, 들어도 들릴리 없으며,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고...

 

퇴계의 학문에 대한 깊이를 가늠하기는 어려우나, 삶에 대한 시각이 분명 달랐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길을 가던 중, 양반의 길을 가로질러 가는 천민의 모습 조차 퇴계에게는 하나의 멋진 풍경으로 비춰졌으니까요...

 

각박하다고, 불합리하다고, 믿을 수 없다고 세상을 부정하며, 나만의 세상속에 갇혀 버렸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였습니다. 쉼없이 뛰어가는 중에, 이렇듯 쉬어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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